■ 故 이정희 씨 떠나보낸 여동생의 눈물
31일 인천 남구 용현동 인하대 대운동장에서 열린 춘천 펜션 산사태 매몰 참사 희생자 합동 영결식장에서 고 이정희 씨 부모와 여동생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 씨의 여동생 선화 씨는 27일 산사태가 나 대학생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춘천으로 달려가다 오빠가 사망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하대 제공
○ 폭우에 판매 아르바이트 취소된 뒤 춘천으로
잠시 후 TV에서 ‘춘천의 한 민박집에서 밤새 산사태가 나 대학생들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거 오빠 이야기 아니니. 얼른 좀 알아봐. 빨리”라고 소리쳤다. 선화 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켰다. 뉴스와 트위터를 검색해보니 인하대 학생들이 맞았다. “엄마, 인하대래요. 인하대가 맞나 봐요.”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풀썩 주저앉았다. “빨리 아빠한테 전화해 봐.” ‘엄마의 직감이었을까’ 힐끗 비친 눈가는 이미 눈물로 젖어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출근을 하다 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길로 가족 모두가 춘천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로 곳곳은 이미 산사태와 침수로 통제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뚫린 길을 찾아 산길을 헤매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가 사망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는 차를 멈추고 운전대에 머리를 숙인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통곡은 차창 밖으로 흘러나와 폭우 속에 묻혔다.
○ 등록금 버느라 놀지도 못한 오빠인데
7월 15일은 오빠의 생일이었다. 그는 오빠가 대천에서 돌아오면 백화점에 데려가 지갑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오빠는 오래돼 귀퉁이가 다 해진 지갑을 들고 다녔다.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하고 자상한 오빠였다. 이번에는 꼭 오빠 맘에 드는 지갑을 사주고 싶었다.
남매가 동시에 대학을 다니고 있어 가정 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한 해 2000만 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온 가족이 일터로 나가야 했다. 아버지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싱크대 등 주방기구를 설치하는 일을 했고 어머니도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오빠와 그도 휴학까지 해가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춘천 상천초교 “추모비 세우겠다”
오빠는 과학에 관심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해 1학년 때부터 동아리 발명캠프 활동에 적극 참가해 왔다. 군 복무 중에도 동아리 발명캠프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할 정도였다. 한 번은 캠프에서 돌아와 배낭에서 꼬깃꼬깃 접은 편지를 여러 장 꺼내며 그에게 자랑했다. 아이들이 써준 편지였다. 캠프 기간 정이 든 아이들이 고마움의 마음을 적은 내용이었다. 오빠는 “이 아이들 중에 훌륭한 과학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뿌듯해했다.
이광옥 상천초교 교장(61·여)은 “봉사활동이 끝난 뒤 파티를 열어주려고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교내에 건립되는 추모비를 통해 정희 씨의 뜻이 오래도록 기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 오빠! 비가 멈추지 않아, 눈물이 멈추지 않아
그는 또다시 비를 주룩주룩 쏟아내는 하늘을 올려봤다. 무심한 하늘이 더욱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는 빗속에서 연방 눈물을 쏟았다. 영정 사진 속 오빠 얼굴도 빗물로 젖어갔다. 이웃과 재능을 나누기 위해 봉사활동에 나섰다 졸지에 참변을 당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청년들은 자신을 앗아간 빗속을 뚫고 그렇게 화장터로 향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박선홍 기자 su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