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O2/장환수의 ‘스포츠와 수학’]3은 야구와 가깝고, 4는 축구와 가깝다

입력 | 2011-07-23 03:00:58


야구선수의 등번호에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다. 2008년 4월 미국 LA 에인절스 선수들이 벌인 재키 로빈슨(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기념 이벤트의 모습. 그의 등번호 42번은 영구결번이 됐다. 동아일보 DB

▶초등학교 6학년 때다. 한 집에 같이 세 들어 살던 옆방 아저씨는 주산학원 선생님이었다. 그는 내가 암산 좀 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한 달만 그냥 학원에 다녀보라고 했다. 이게 웬 떡. 그런데 하루는 내가 문제를 푸는데 그가 슬쩍 곁눈질만 하고도 틀린 답을 귀신 같이 잡아내는 게 아닌가. 제 아무리 9단이라도 그렇지, 억 단위인데…. 신기했다. 궁금증은 한 달 뒤 학원을 그만두는 날 풀렸다. “그 문제집의 답은 모두 9의 배수로 돼 있어. 9의 배수는 각 자릿수를 모두 합한 값이 9의 배수로 나와. 123,456,780의 경우 1+2+3+4+5+6+7+8+0=36이니까 9의 배수야. 네가 쓴 답만 보면 최소한 틀렸는지는 금세 알 수 있지.” 이런, 진작 가르쳐줬으면 검산할 때 아주 유용했을 텐데. 그렇게 공짜로 배운 주산은 비록 짧은 경험이었지만 인생의 큰 자산이 됐다.

▶자연에도 수의 배열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1202년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발표한 피보나치수열이다. 꽃을 예로 들면 나팔꽃은 1장, 등대풀은 2장, 붓꽃은 3장, 채송화는 5장, 모란은 8장, 금잔화는 13장, 애스터(과꽃)는 21장, 데이지는 종류에 따라 34장, 55장, 89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보나치수열은 일견 아주 무질서해 보이지만 앞의 두 숫자를 더하면 다음 숫자가 된다. 뒤의 숫자를 앞의 숫자로 나누면 ‘1.618…’에 근접해간다. 황금비율 또는 황금분할로 불리는 1.618…이란 숫자는 소라껍데기부터 파도, 태풍, 은하계의 나선구조와 동식물의 생장(生長), 인체의 구성 비율, 인간의 심리 상태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신비를 풀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열쇠로 알려져 있다.

▶자연계만큼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스포츠에도 수열이 있다. 우선 재미삼아 평창이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숫자를 통해 살펴보자. 행운의 숫자 7과 동양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인 3이 무수히 겹친 덕분이란 게 최근 네티즌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개최지 투표는 한국 시간으로 7월 7일 열렸다. 평창은 투표할 때 고유 번호 7번을 배정 받았고, 지역을 알리는 브랜드가 해발 700m를 뜻하는 해피700이다. 대회는 앞으로 7년 남았다. 3과 관련해선 평창은 3수(修)를 했으며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와 3파전을 벌여 1차 투표에서 3의 배수인 63표를 얻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 이후 30년 만에 겨울올림픽을 유치했으며, 행운의 도시 더반에서 홍수환의 복싱 세계 챔피언 탄생과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에 이은 3번째 쾌거를 맛봤다. 물론 이 숫자들의 힘을 빌려 평창이 올림픽을 유치했는지는 ‘믿거나 말거나’이다.

▶스포츠 종목을 살펴보면 같은 숫자의 배열이 아주 많이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구는 3이 자주 보인다. 3의 배수인 9명이 수비를 하고 정규 이닝은 9회까지 하며, 3아웃 공수교대와 삼진이 있다. 퀄리티 스타트는 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을 던져 3자책점 이하로 막았을 때 부여한다. 프로 리그는 주중과 주말로 나눠 3연전을 벌이며, 외야수는 3명이다.

반면 축구는 4가 많이 나온다.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며, 조별리그에 4팀씩 배정되고, 32팀이 본선에 진출해 16강부터 토너먼트를 벌인다. 축구 경기장은 야구장과 달리 사각형이다. 월드컵이 4년마다 열리는 것은 올림픽과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올림픽은 4의 배수 해에, 월드컵은 그 사이에 2년 시차를 두고 열린다.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게 된 것은 고대 로마의 달력이 오차가 심해 4년마다 표준시를 다시 정해야 했는데 그 해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기념해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숫자 9는 십진법에서 1이 모자라 불안정한 숫자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가장 큰 수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9는 스포츠 종목의 규칙 제정에도 큰 기여를 했다. 앞에서도 나왔듯이 야구는 9명이 9회까지 하는 운동이다. 바둑은 입신의 경지를 9단이라고 한다. 이게 널리 퍼지면서 야구 9단이나 정치 9단이란 파생어가 나왔다. 축구는 라이트 시설이 없던 시절 영국에서 비가 오는 시간을 피해 오후 3시부터 4시 30분 사이에 했던 게 전후반 90분의 기원이 됐다. 골프는 전반 9홀, 후반 9홀을 합쳐 18개 홀을 하루에 돈다. 참고로 인기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멤버도 9명이다. 이는 9명이 좌우대칭을 이뤄 무대를 꽉 차 보이게 하기 때문이란다.

▶선수들이 등에 다는 번호에도 처음엔 약속이 있었다. 대체로 야구는 투수가 1번, 11번, 21번 등 1번을 끝자리로 사용했다. 같은 원리로 포수는 끝자리가 2번, 1루수는 3번, 2루수는 4번이 많았다. 축구는 4-3-3 포메이션을 기준으로 1번이 골키퍼(필수), 2∼5번이 수비수, 6∼8번이 미드필더, 9∼11번이 공격수다. 9번은 스트라이커를 상징하는 번호로 호나우두, 카카, 페르난도 토레스 등이 달았다. 요즘은 에이스를 상징하는 10번이 더 빛나 보인다. 리오넬 메시의 등 번호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이기 때문이다. 펠레, 마라도나, 지네딘 지단이 달았던 번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야구든 축구든 등 번호 배정 원칙은 많이 탈색됐다. 농구는 1∼3번을 달 수 없다. 심판이 파울 개수 등을 손가락으로 표시할 때 등 번호와 중복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국제대회에선 12명의 엔트리가 4번부터 15번까지의 번호를 배정받는다. 하지만 마이클 조든이 23번, 앨런 아이버슨이 3번을 다는 등 이 또한 무조건 지켜야 할 원칙은 아니다.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