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내리던 그제 서울 도심에서 ‘야한’ 시위가 벌어졌다. 슬럿(slut·성매매 여성을 비하한 말) 워크(walk) 시위의 상륙이었다. 캐나다 경찰이 “성폭행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처럼 옷을 입고 다니지 마라”라고 한 데 대해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반발하면서 생긴 조어(造語)다. 한국에서도 첫 동조 시위가 열린 것이다. 트위터를 통해 조직된 여성 200명이 섹시한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섰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원피스는 비에 젖어 육감적인 몸매를 더 드러냈다. 쇄골을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은 검은 브래지어 속으로 스며들었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피고인’이나 지나 데이비스 주연의 ‘델마와 루이스’에서는 술을 먹고 흐트러진 모습의 주인공이 강간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 참가한 자칭 ‘슬럿’들은 사회를 향해 “야한 옷이 성폭력의 원인이 아니다”라고 목청껏 외쳤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옷 입는 방식과 성범죄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힘없는 어린아이나 할머니가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더라도 ‘헤프게’ 입는 옷이 성범죄를 유발하는 주된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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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