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문화부장
백범 김구의 ‘문화강국론’이다. 오늘날 서구의 주요 도시 중심부에서 금발 소녀들이 한국어로 ‘소원을 말해봐’를 목청껏 외치는 모습을 그가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정관념은 갖지 말자. ‘이런 걸 말한 건 아닌데…’라며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들로부터 남에게 전달된 그 ‘행복’에 백범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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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파리 SM타운 공연을 맞아 르몽드는 “한국 정부가 역동적 이미지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각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문화력’을 국력 향상의 무기로 삼는 것은 프랑스인들도 처음 보는 일이 아니다. 그 옆 나라 영국은 1997년 토니 블레어 정부가 들어서면서 ‘창의적 영국(Creative Britain)’을 기치로 내세웠다. 당시 문화부 장관 크리스 스미스가 쓴 같은 이름의 책 ‘창의적 영국’은 그 상세한 전략을 전달한다. 광고, 문화상품, 디자인을 영국 산업의 주력으로 삼겠다는 청사진이 책에 나타난다.
오늘날, 그들의 전략은 성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7, 2008년의 경우 TV 프로그램 포맷 수출액은 영국이 미국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포함한 다양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도 이 시기부터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류에 대한 문화강국 프랑스의 차가운 반응은 옆 나라 영국에 대한 질투심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은? 과연 경계심을 살 만큼 공격적 문화 전략을 구사할 여건은 돼 있는 걸까. 2009년 프랑스의 전체 국가 예산 대비 문화 예산 비율은 2.25%, OECD 전체 평균은 1.88%였다. 한국의 경우 같은 해 정부 재정 중 0.9%만이 문화관광 관련 예산으로 쓰였다. 올해 간신히 1.01%까지 올라가기는 했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를 달성한 뒤 계속 옆걸음을 했다.
문화 예산이 한류 관련 전략에만 쓰일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탄탄한 문화 재정은 해외로 진출하려는 다양한 세대와 장르의 예술가에게 유무형의 지원으로 날개를 달아줄 것이며 이 분야의 인재 육성에도 큰 밑받침이 될 것이다. 이렇게 강화된 국가 브랜드는 유형의 경제적 혜택과 다른 수많은 무형의 혜택으로 이어질 것이다. 거기에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한국인이 받을 ‘존중’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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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