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커다’ 포효… 동굴서 뛰쳐나온 호랑이
《조용필이 양지의 가왕이라면 임재범은 어둠의 제왕이다. 조용필의 승리가 끝없는 연습과 음악적 열정으로 이룬 후천적인 승리라면, 임재범은 자학과 가학 사이를 오가는 본능의 더듬이로 폭발하는 음악적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러나 25년을 넘어서는 그의 음악 이력서는 파란으로 점철된 어두운 무용담이다. 그는 김건모 재도전 파문으로 위기에 처했던 MBC의 ‘나는 가수다’를 단 세 곡의 노래로 되살린 일등 공신이지만 거꾸로 거의 잊혀져 가던 그를 밝은 세상으로 끌어낸 것도 ‘나는 가수다’였다.》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1990년대 초반까지 그는 시나위와 외인부대, 아시아나 같은 록밴드를 전전했지만 어디에서도 두 장 이상의 앨범을 같이하지 못했다. 징병제가 로큰롤 키즈들의 지속적인 밴드 활동을 가로막는 데다 거칠기 이를 데 없고 대중성마저 결여된 이런 사운드를 방송과 공연, 음반산업 모두 반기지 않았던 것이다.
6년의 침묵 후 그는 두 번째 앨범 ‘Desire to Fly’를 발표하며 ‘비상’ ‘그대는 어디에’ ‘사랑보다 깊은 상처’ 같은 솔(soul)의 짙은 음영이 묻어나는 미디엄템포의 록발라드를 선보인다. 30대 중반으로 돌입한 그는 더는 ‘로큰롤 베이비’가 아니었다. 여전히 은둔의 스탠스를 지니고 있었기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이 컴백 앨범은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여성 팬층까지 유혹하는 충만한 남성성의 서정을 분만한다. 특히 작곡가 신재홍(‘너를 위해’의 작곡가)이 제공한 ‘사랑보다 깊은 상처’는 이듬해 데뷔한 박정현의 첫 앨범에 임재범과의 듀오로 재녹음되어 빛나는 혼성 듀오 곡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의 짧은 절정기를 빛내는 2장의 정규 앨범 ‘고해’(1998년)와 ‘Story of Two Years’(2000년)가 연이어 발표된다. 헤비메탈의 초심으로 돌아간 세 번째 앨범의 타이틀곡 ‘고해’와 그의 최대 히트곡이 된 4집의 ‘너를 위해’는 모든 보컬리스트를 절망시키기에 충분한, 모든 상처의 기억들을 웅혼하게 승화하는 압도적 절창이다.
그룹 ‘시나위’ 시절의 임재범(왼쪽)과 신대철. 사자 갈기를 닮은 장발의 임재범은 당시 무대에서 폭발적인 젊음과 열정을 토해냈다. MBC 제공
그런 그가 불사신처럼 돌아온 것이다. 그토록 두려워하고 경멸했던 TV 무대로. 후배 김범수는 ‘왕의 귀환’이라고 불렀고 작곡가 김형석은 ‘나만 가수다’라고 조크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안경을 쓴 그의 표정에선 1991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 등장했던 이글거리는 도시의 야수 같은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너를 위해’와 ‘여러분’의 클라이맥스로 치솟는 원시적인 에너지는 순식간에 무대 위의 공기를 팽팽하게 흡입했고 순간 모든 이는 판단정지의 오르가슴을 맛보았다.
임재범(왼쪽)은 1989년 ‘백두산’의 기타리스트였던 김도균(오른쪽)과 록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건너가 현지인 멤버들과 밴드 ‘사랑’을 결성했다. 활동기간은 짧았지만 BBC 지역라디오에 출연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