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경수로 제공을 대가로 핵 활동을 동결하겠다는 1994년 10월의 북-미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핵개발을 계속했다는 증거가 또 나왔다. 1998년 7월 전병호 당시 북한 노동당 군수담당 비서가 파키스탄 핵개발의 주역인 압둘 카디르 칸에게 보낸 서한에는 북한이 핵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파키스탄 군부에 350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37억 원)를 뇌물로 건넨 사실이 적시돼 있다. 앞서 북한은 2002년 10월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에게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가동사실을 시인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뒷전에서 핵개발을 계속했고, 애당초 중단할 생각이 없었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파키스탄 군부에 준 350만 달러는 핵개발의 수업료였다. 당시 쌀 국제시세를 t당 300달러로 치면 대략 1만1600t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다. 북한의 1일 쌀 배급량이 500g 정도였으니 그 돈으로 쌀을 샀더라면 북한 주민 2400만 명이 하루 세 끼를 배불리 먹었을 것이다. 두 차례의 핵실험에 6000억∼7000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체 주민의 1년 치 쌀값에 해당한다. 옥수수나 다른 저가(低價) 식량을 산다면 몇 년 치가 될 수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식량 부족에 따른 인민의 고통보다는 “세습 공화국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핵무기 제조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그는 지금 리비아를 보며 자신의 선택을 흐뭇해할지도 모르지만 구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붕괴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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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그제 “우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확실히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6자회담이든 남북대화든 핵개발에 집착하는 북한의 정체를 똑바로 알고 임해야 또다시 거짓 농간에 당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