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일여고 3학년 윤란 양(오른쪽)은 최근 1박 2일 일정으로 강원 태백레이싱파크를 찾아 카레이서 김의수 씨를 인터뷰했다. 두 사람은 인터뷰를 마친 뒤 머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울 예일여고 3학년 윤란 양(18)은 ‘신나는 공부’의 도움으로 김 씨를 인터뷰했다. 윤 양은 ‘2011 CJ 티빙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2차전 취재기자 자격으로 지난달 27일 강원 태백레이싱파크를 찾았다.
○도로 위의 ‘오뚝이’… 억대 연봉 카레이서 되다
김 씨는 어떻게 카레이서가 됐을까? 울산에서 태어난 그의 어릴 때 꿈은 사업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큰 돈을 벌어보겠다며 막노동부터 배추장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본 레이싱 대회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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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화랑레이싱’ 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때 나이 23세. 그렇게 그는 비포장도로에서 시합하는 오프로드 레이싱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첫 출전한 대회는 1993년 6월 태안반도 청포대에서 열린 오프로드 경기. 하루 종일 산길을 운전하며 연습에 매진한 그는 결국 오프로드 대회 챔피언에 올랐다. 그러자 ‘우리나라 최고의 카레이서가 되고 싶다’는 승리욕이 발동했다. 서킷에서 열리는 온로드 선수로 전향한 이유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1996년에는 해외에서 열리는 카레이싱 대회 국내 대표를 뽑는 테스트에서 우승을 했지만 이듬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면서 대회 자체가 취소되고 말았다. 김 씨는 1년간 프로팀에서 온갖 굳은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얼마 뒤 영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생겼지만 그것도 팀 사정으로 무산됐다.
“답답한 마음에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28세 때였어요. 하지만 결국 레이싱 팀에는 들어갈 수 없어요. 절망스러웠죠. 그러다가 기회가 왔어요. 1998년 ‘인디고 레이싱’ 팀 대표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이 와서 레이싱 선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제2막의 시작이었죠.”
○0.025초의 싸움… 카레이서는 눈이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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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로 ‘카레이서는 눈이 8개’라는 말을 해요. 두뇌회전이 아주 빨라야 해요. 0.025초의 싸움이에요. 경기를 하면서 수온, 유압, 주변 차와의 거리, 무전내용 같은 수십 개가 넘는 정보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서 순간적 판단을 내려야 하거든요.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코스 밖으로 튕겨져 나가기 십상이에요.”
“그럼 위험하지는 않나요?” 윤 양의 질문을 받은 김 씨가 대답했다.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레이싱 대회가 열리면 크고 작은 사고가 나지만 다치는 선수는 거의 없어요. 레이싱 머신뿐 아니라 경기장 안팎에도 많은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죠.”
사실 직업 카레이서가 되는 문은 넓지 않다. 아직 국내에는 레이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교나 팀이 없는 게 현실. 김 씨는 “고교생이라면 당장 레이싱 세계에 뛰어들기보다는 먼저 학업에 충실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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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급 카레이서가 된 김 씨. 하지만 ‘돈을 번다’며 중학교를 중퇴하는 바람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앞으로는 카레이서, 정비기술자, 전문기자 등 모터스포츠 분야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전문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다.
“꿈이 있다면 기회는 분명히 올 겁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태백=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카레이서 김의수 씨를 만나 인터뷰한 서울 예일여고3학년 윤란 양은 고교생을 위한 국내 유일의 주간신문‘P·A·S·S’ 의 고교생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윤 양처럼 P·A·S·S 고교생 기자가 되면 영화감독, PD 등 전문가나 사회 저명인사, 인기 연예인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2000명 가까운 고교생이 P·A·S·S 고교생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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