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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행원 채용바람 몰고 온 기업은행 김지혜 계장

입력 | 2011-06-24 03:00:00

“나고수 각오로 일해요” 당찬 19세 행원




“고졸 출신 대표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엑셀이나 컴퓨터 실력은 대졸 출신 언니, 오빠들도 못 따라오죠.”

기업은행의 경기 의왕시 롯데마트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김지혜 계장(19·사진)은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금융상품을 설명하는 목소리는 아주 야무졌다. 김 계장은 요즘 은행창구에서 만나기 힘든 10대 행원이다.

그는 지난해 2월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한 제약회사에 다니던 중 기업은행의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해 은행원의 길을 걷게 됐다. 기업은행이 고졸 출신 신입행원을 뽑은 것은 1996년 공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었다. 사실 은행 창구직원은 외환위기 전만 해도 여상 출신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지만 은행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은행에서 고졸 출신을 뽑지 않은 지가 오래돼서 꿈도 안 꾸고 증권사 쪽이나 응시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채용공고를 보고 깜짝 놀랐죠. 고교 시절 내내 전산회계 등 자격증 5개를 따고 취업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솔직히 합격까지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나 간절함이 통했는지 그는 그해 12월 34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자 110명 안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전체 합격자 중 고졸 출신은 자신을 포함해 단 2명이었다. 대졸 출신에게도 ‘좁은 문’인 은행에 입성한 그는 주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대학 다니는 친구들한테 은행 취직했다고 하면 ‘텔레마케터 아니냐’며 처음엔 잘 믿지 않다가 나중에 알고 나면 엄청 부러워해요.”

하지만 은행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대졸 동료들과 함께 3주간 신입사원 직무연수를 받는 내내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까지 나온 언니, 오빠들이 나랑 같이 은행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불만스럽진 않을까 신경도 쓰이고 깊이 있는 금융 업무는 어렵더라고요.”

그럴수록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졸 출신’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려도 어깨를 펴려고 애썼고, 올 1월 정식 발령이 난 뒤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 가며 업무 파악에 애를 썼다. 어려 보이지 않으려고 말투와 옷차림에도 신경을 쓰며 고객들을 응대했다.

반년 가까이 지난 현재 그는 지점에서 ‘컴퓨터 박사’로 통하며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무래도 문서 작성이나 인터넷 검색 등은 빠르다 보니 다들 저한테 부탁해요.” 고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단다. “신기해들 하시죠. 우연히 여상 출신 고객을 뵙기도 했는데 ‘정말 장하다’며 예금을 더 들어주셨답니다.”

스스로를 ‘고졸 대표’로 생각한다는 그는 지금 펀드투자상담사를 비롯한 3개의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이다. 은행원으로서의 미래도 그려 나가고 있다. “지금은 계약직이지만 2년차를 넘기면 85% 정도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돼요. 일단 무기 계약직이 되는 것이 목표고요. 그 다음엔 시험을 치러서 정규직으로 가고 싶어요. 고졸 출신 지점장들도 계시다던데 저도 열심히 뛸 거예요.”

그는 부탁도 빼놓지 않았다. “학교에 각종 자격증을 12개나 딴 친구도 있었어요. 고교 시절부터 전문성을 닦아 놓는 능력 있는 친구도 많으니까 고졸 출신에게도 취업문이 좀 더 열렸으면 좋겠어요.” 기업은행은 지난해 채용한 김 계장 등 고졸 출신 행원의 업무성과가 돋보이자 올해 4월 상반기 공채에서 특성화고 출신 20명을 선발했다. 국민은행도 12개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4월 말 8명을 뽑았고 하반기 채용도 검토하고 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