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전영수 지음/400쪽·1만6000원·맛있는책
“주먹밥이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굶어 숨진 노인, 한여름 전기료가 없어 열사병으로 사망한 고령자, 쪽방에서 숨진 지 한참 후에 발견된 무연고 홀몸노인의 시신…. 노인천국 일본의 다른 단면이다. 전국에 산재한 빈집이 800만 채, 이 중 백골의 시신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는 집은 몇 가구인지 알 수조차 없는 것이 섬뜩한 현실이다.
이 책은 현대 일본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에 접어들면서 맞닥뜨리게 된 새로운 양상의 빈곤 문제를 비롯해 각종 병폐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노인들의 생계형 범죄도 급증했다. 2009년 65세 이상 노인 범죄자가 4만8000명으로 2000년 1만8000명보다 2.7배 늘었는데 이 중 대다수는 절도범이다. 2004년 방영된 NHK ‘급증하는 노인범죄’에 따르면 65세를 넘긴 후 처음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이 많다. 살인 방화 상해 폭행 강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노인도 적지 않다. 특히 2010년 일본민영철도협회 발표에 따르면 전철에서 폭행을 가장 많이 저지른 세대가 60대 이상이었다.
이 책은 특히 이제 막 현역에서 은퇴하고 노년기에 접어든 단카이(團塊)세대(1947∼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처한 상황을 상세하게 다뤘다. 이들은 젊은 세대로부터 ‘대형쓰레기’, ‘괴물’, ‘망주(妄走·미쳐 날뛰는) 노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탁기 하나 돌릴 줄 모르면서 퇴직 후에도 가족이나 후배들 앞에서 ‘관리직’이고자 하는 모습 때문이다. 일부 젊은이는 “고도성장의 배부른 잔치를 즐긴 고령 세대가 음식 구경조차 못한 우리에게 설거지마저 시킨다”며 분노를 쏟아낸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 노인들이 겪는 빈곤 문제는 이미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폐지와 빈병 등을 모아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은 대한민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동아일보DB
도심 인근 신도시에 주로 거주하는 노인들은 두부 한 모를 사기 위해 1km 이상 걸어야 한다. 돈을 안 쓰는 노인이 많은 동네다 보니 단지 내 중소형 점포는 매출 저하를 이유로 문을 닫는다. 물론 돈 있는 노인은 두부 값보다 비싼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몸이 아파도 쉽게 갈 만한 동네병원이 없고 기름을 살 만한 주유소도 없다. 이런 ‘구매 난민’이 최소 6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부자나라 일본도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고령사회를 맞는다면 무차별적 ‘노후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며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부는 물론이고 개개인도 철저히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행복한 노후를 위한 최선책은 인생 2막에도 계속될 수 있는 근로소득 확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초고령사회 일본의 오늘을 생생한 사례와 다양한 통계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나 지자체, 기업 또는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우리가 배울 만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