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돋친 말 아닌 향기 품고 사세요”
11일 서울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열린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10만 부 돌파 기념 북콘서트에서 이해인 수녀가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강연하고 있다. 이날 북콘서트는 400석 공연장이 가득 찰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이해인 수녀(66)가 94세로 별세한 고모 얘기를 꺼내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2008년 대장내시경을 받던 중 암이 발견돼 현재도 항암치료 중인 주인공이 스스로 죽음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고모님은 6·25전쟁 때 저를 비롯한 조카들을 많이 돌봐주셨어요. 여러분과 함께 머무는 이 시간, 살아있다는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하는 자리이고 싶습니다”라는 이 수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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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북콘서트는 400석 공연장이 가득 차 일부 관객이 서서 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는 “낭독회나 사인회는 많이 했지만 북콘서트는 처음”이라며 관객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행사는 이 수녀의 시를 지인이나 관객 등이 나와 읽으면 이 수녀가 설명을 곁들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6월의 장미가/내게 말을 건네옵니다.//사소한 일로/우울할 적마다/“밝아져라”/“맑아져라”/웃음을 재촉하는 장미//삶의 길에서/가장 가까운 이들이/사랑의 이름으로/무심히 찌르는 가시를/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서정훈 신부가 시 ‘6월의 장미’를 대독하자 이 수녀는 이렇게 말을 보탰다.
“이전에는 민들레 냉이꽃 등 수수한 꽃을 좋아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화려한 꽃들이 좋아지네요. 호호. 여러분은 가시 돋친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받아도 다시 가시 돋친 말로 되갚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입에 항상 장미 향기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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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불화하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나와 네가 다름을 하나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관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이 수녀의 재치 있는 말솜씨가 빛났다. 10대 소녀가 “짝사랑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하자 이 수녀는 “저도 중 2 때 저 좋다는 남학생에게서 편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편지에 ‘나는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댁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댁이 뭐냐, 소녀도 아니고. 그래서 거절했죠.”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 수녀는 “좋은 책과 시로 한번 고백을 해봐라”고 조언했다.
한 중년 남성이 “부부 사이에 다툼이 많아 걱정이 된다”고 하자 이 수녀는 “상대방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상상 이별’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세 가지는 무언가’란 질문에는 ‘성경, 필기도구, 세면도구’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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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