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은 대책 없고… 靑은 한발 빼고
한나라당이 제기한 ‘등록금 부담 완화’ 이슈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며 길을 잃고 있다.
황우여 원내대표 등 신주류가 지난달 ‘국정 쇄신책 1호’라며 의욕적으로 들고 나왔지만 구체적인 방법론 제시에 실패하며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는 등 오히려 사회적 혼란만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 여당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야권은 10일부터 일부 대학생의 집회에 동참하며 등록금 문제를 쟁점화할 예정이어서 민생 이슈가 또다시 정치 이슈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황 원내대표가 지난달 22일 ‘반값 등록금’을 제기하며 등록금 이슈가 본격적으로 불거졌지만 당정 협의는커녕 당내 조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나온 설익은 구상이었음이 드러났다.
10여 년 전부터 등록금 문제에 천착해 왔던 황 원내대표의 정치적 신념이 강하게 작용했을 뿐이다. 정책 파트너인 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이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조차 황 원내대표의 이슈 제기에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시위 대학생, 경찰과 대치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집회 도구를 내려놓던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청와대는 “재정 소요가 많이 드는 정책은 사전 협의해야 한다”는 정도의 반응만 내놓을 뿐 전면에 나서길 꺼리는 모습이다. 주무 부처인 교과부는 “국회에서 먼저 대책을 만들어야 검토할 수 있다”며 국회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대학 재정 지원금을 포함한 고등교육 예산으로 1조5000억 원 정도를 추가 확보할 계획이지만 기획재정부와 어느 수준까지 협의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아스팔트 위에선 해결 안 돼
한나라당 내에선 “좋은 뜻에서 시작한 등록금 부담 완화 이슈가 거꾸로 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실제로 7일 열린 한나라당 중진 회의에서 이경재 의원은 “등록금 문제와 관련한 재정문제 해결 노력이 아직 없다”며 “이대로 가다간 (등록금 문제가 여야 간) 이념 투쟁의 고리로 활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회의 뒤 본보 기자와 만나 “2011년 2학기가 코앞이다. 등록금 문제를 빨리 풀지 않으면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 한 고위 관계자도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한나라당=무능 정당’으로 찍히고 내년 선거에서 최대 악재 중 하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강원택 교수는 “한나라당의 등록금 이슈는 정치가 낭만이나 선의(善意)만으론 결코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3일 회동에서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한 만큼 지금에라도 당정청 TF를 만들어 제대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