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락 사회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29일 병·의원에 400억 원대 리베이트를 제공한 국내외 9개 제약사에 약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밝힌 리베이트 제공 사례다. 제약사가 병·의원에서 받아야 하는 외상 매출금 잔액을 할인해주거나 의사에게 학술논문 번역을 의뢰하고 통상적인 번역료보다 150배나 많이 지급하는 방법으로 은밀하게 리베이트를 준 경우도 있었다.
공정위의 리베이트 적발 사례를 보면서 ‘경찰은 그동안 뭘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울산지방경찰청이 지난달 7일부터 ‘의사 리베이트 수수’ 의혹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경찰은 지금까지도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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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조사 대상 의사들이 학술회의 참석 등을 이유로 소환에 불응하자 e메일 조사나 변호사를 통한 답변서 제출도 허용해 ‘봐주기 수사’ 논란을 자초했다. 수사 상황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다 한 달여 만에 “울산과 경남 양산지역 의사 62명을 조사했다”는 내용만 공개했다.
수사 경찰관은 30일에도 “의사들이 받은 돈의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현장 확인 등이 필요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말만 했다. 또 “행정 처벌과 사법 처벌은 다르다”며 공정위와는 다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불공정 거래 행위를 심의·의결하는 준(準)사법기관’인 공정위가 적발한 리베이트 사례를 사법기관인 경찰은 두 달 가까이 한 건도 적발하지 못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부실 수사’라는 지적을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병·의원과 제약사 간 리베이트 수수 행위는 사회적 약자인 환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경찰의 분발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울산에서
정재락 사회부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