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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등록금 인하, 대학 모델부터 정하고 논의하라

입력 | 2011-05-23 03:00:00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어제 밝힌 등록금 부담 완화 계획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반값 대학 등록금’ 혹은 ‘등록금 대폭 인하’를 적극 실현시키려는 구상이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까지 나온 단계는 아니지만 등록금을 낮추는 대신 정부 재정으로 장학금을 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등록금을 낮추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학 재정의 일부를 부담하는 방식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한나라당은 최근 대학 등록금이 비싸 중산층 가정에서도 부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자 등록금 문제를 들고 나온 듯하다. 우리나라는 등록금이 경제규모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의대가 아닌 대학도 등록금이 연간 1000만 원을 넘나든다. 하지만 정부가 하위 소득 50%까지 지원해주는 것보다는 더 가난한 집안 출신 학생의 장학금을 확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우리 대학 진학률은 2010년 79%에 이른다. 대졸자들의 일자리 기대치는 높은 편이지만 대졸백수는 늘어만 간다. 고학력 사회의 한쪽에서는 구인난(求人難)이, 다른 쪽에서는 대졸자 취업난이 빚어지는 인력 수급의 불균형이 오래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면 대학 진학률이 더 높아지고 청년 실업자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출산율의 대폭 감소로 2020년에는 한 해 고교 졸업자가 현재의 60만 명에서 4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는 ‘한계 대학’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퇴출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이들 대학에까지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부를 공산이 크다. 대학 등록금 인하 문제는 그때그때 대증요법식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 고등학교 의무교육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인 교육 서비스의 큰 그림 속에서 신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은 수요자 스스로 선택하고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미국도 주립대는 등록금 규제를 하지만 사립대 등록금은 자율에 맡긴다. 유럽에서는 대학교육이 무상이지만 영국과 호주 대학들은 일부라도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다 보니 대학경쟁력이 미국에 비해 크게 낮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사안을 정치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상당한 부작용을 동반할 우려가 있다.

예산으로 등록금을 지원하는 제도는 우리나라가 향후 어떤 대학 모델을 갖고 갈 것인가와 연관된 문제다. 유럽 대학의 모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주립대와 사립대가 조화를 이루는 미국 모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대학에 투자해 세계적 명문을 육성하는 중국 모델을 따를 것인가. 한나라당은 정치적 포퓰리즘이 아니라 분명한 교육 철학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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