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전까진 좋은 아버지로 착각하며 살았죠”
《 “출산하면 산모가 산고(産苦)를 겪는 것처럼 입양할 때도 마음의 산고를 겪어야죠.” 입양의 날(5월 11일)을 하루 앞둔 10일 딸 셋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차성수 서울 금천구청장(54)은 입양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6년 가을 첫 입양 당시 이미 아들이 20대 중반이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
○ 2006년부터 3년간 3명 입양
차성수 금천구청장(윗줄 왼쪽)이 입양한 딸 혜윤 혜주 혜인 양(왼쪽부터), 부인 유현미 씨와 함께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차 구청장은 2006년부터 3년간 매년 한 명씩 입양했다. 금천구 제공
차 구청장 부부는 친아들을 키울 때와 달리 입양한 혜인이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해야 했다. 혜인이가 항상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버릇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혜인이가 과거 파양(입양이 깨지는 일)의 아픔을 겪은 사실을 알고 한없이 마음이 쓰라렸다.
○ 조건 없는 사랑이 있어야
혜인이를 입양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그는 처음으로 큰 보람을 느꼈다. 집에 온 뒤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정을 좀처럼 밖으로 표출하지 않던 혜인이가 아빠에게 혼나면서 처음으로 울었기 때문이다. 운다는 것은 상대에게 서운함을 표시하기 위한 하나의 행위다. ‘이제야 혜인이가 아빠에게 마음을 열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차 구청장은 “세 딸을 얻기 전까진 나름대로 좋은 아버지라고 착각하고 살았다”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셋을 입양해 키우면서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털어놨다.
차 구청장은 입양의 필수 조건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꼽았다. 하지만 그는 “입양한 아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주는 게 아니라 진짜 내 자식처럼 가르치고 혼내며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만 18세가 되면 보육 시설을 나와야만 하는 아이들을 위해 작은 쉼터를 만드는 것. 그는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은 이 나이가 되면 차가운 사회에 던져지듯 나온다”며 “이들이 함께 모여 서로 의지하고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꼭 마련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 입양가정 43%가 평균소득 이하… 양육 보조금 월 10만원뿐 ▼
정부지원 현실화 필요
2007년 태어난 지 3개월 된 아이를 입양한 A 씨 부부는 두 돌을 넘긴 뒤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에게 자폐와 간질 증상이 발견된 것. 곧바로 재활 치료를 시작했으나 진료비가 예상외로 많았다. A 씨 부부는 “재활치료 한 번에 수십만 원의 병원비가 나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입양을 주선한 홀트아동복지회 측은 “정부에서 한 달에 50여만 원의 치료비를 받긴 하지만 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만 지원이 되는 데다 그나마 연간 260만 원 이상은 받을 수 없어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늘지 않고 있는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제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입양 가정과 주선 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입양을 하는 가정의 절반가량이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397만5686원·2009년 4인 가족 기준) 이하의 형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입양 아동의 진료비 등 급한 지원금이라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 전체 입양된 아이는 2439명. 이 중 국내 가정에 입양된 아이는 1314명으로 전체의 53.9%다. 이 가운데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이하인 가정으로 입양된 아이는 563명(42.8%)이다. 여기에는 소득이 최저생계비(2009년 4인 가족 기준 월 132만6609원) 이하인 가정에 입양된 아이 10명, 차상위 계층 소득의 120%(4인 가족 기준 월 191만316원) 이하인 가정에 입양된 아이 72명도 포함돼 있다.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는 제정 당시인 1976년(당시 입양특례법)부터 양친의 자격요건에 ‘충분한 재산이 있을 것’이라고 명기돼 있다. 하지만 입양 자격 가운데 소득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은 마련된 적이 없다. 아이를 양육하기에 소득이나 재산이 턱없이 모자라더라도 입양엔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셈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입양 자격에 부모의 재력도 구체적으로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입양 주선 단체는 “국내입양 활성화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육아비용이 많이 드는 한국 현실을 감안할 때 입양 지원금이 현재보다 3배 이상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