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봉선 고려대 북한학과 겸임교수
김정일은 미국과 대화가 필요하면 미국인 인질을 잡고 전직 미 대통령들을 불러들여 자신 앞에 굴종시킴으로써 북한 주민에게 ‘위대한 장군’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했고, 카터는 북한이 억류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를 데려온 바 있다. 이번에도 5개월째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전용수 목사 석방 문제를 협의했을 것이다. 카터는 이번 방북 때 김정일과 김정은을 만나 자신이 남북한의 경화된 국면을 완화하고 평화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과시할 생각이었다. 이런 모습은 평화사절단이라기보다 뉴스메이커로서 자신의 이름값을 올리려는 노욕(老慾)으로 보인다.
카터가 1994년 6월 북한 핵 위기 시 김일성과의 회담으로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복귀시키고 미국의 영변 공격에 제동을 건 역할에 대해 자서전에서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에게 마음 편한 손님이 아니다. 카터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자신의 대선공약인 주한미군 철수를 실행에 옮겨 1978년 3400명의 미군을 1차 철수시키고 추가 철군을 계획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와 미 의회 및 군의 반대, 땅굴 발굴 등으로 취소됐다. 카터는 재임 시 주한미군 철군과 함께 한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군이 한반도에 배치한 전술핵무기 제거를 압박해 북한을 흡족하게 했다. 카터의 이런 태도에 맞서 당시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선언하고 미사일 개발 실험을 해 한미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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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는 1979년 6월 29일 한국을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유신체제하의 한국 인권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워 감정적 대립까지 하였다. 카터는 인권 문제에 대해 그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과거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지만 김정일에게는 이제껏 인권 문제를 단 한마디도 거론한 적이 없다. 카터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등과 함께 미국 내에서 몇 안 되는 친북 성향 인물이다. 독재자 김정일에게 인권에 대해 바른말 한마디 못한다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자격이 없다.
남북관계의 경색은 북한의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연이은 무력도발이 원인이며 이는 도발을 한 북한에 책임이 있다. 이제 카터는 김정일의 비핵화 및 식량놀음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카터는 희대의 독재자를 만나는 일로 국제뉴스메이커로 자처하는 것을 그만두고 고향인 조지아 땅콩농장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 낫다.
송봉선 고려대 북한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