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爲氣也는 ‘호연지기의 氣됨이’라는 말로, 전체 문장의 주어절이다. 配(배)는 合(합)하여 도움이 있다는 뜻이다. 주자(주희)에 따르면 義는 人心의 裁制(재제·재단하고 제어함)이고 道는 天理의 自然(자연·저절로 그러함)이다. 與는 대등 연결사이다. ‘配義與道란 말은 氣가 道義와 합해 그것을 도와 사람이 道義를 행하기를 용맹스럽고 결단성 있게 행하는 것을 뜻한다. 無是의 是는 앞에 나온 義와 道를 가리킨다. 주릴 뇌는 굶주리고 결핍돼 氣가 몸에 충만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북송의 학자 정이는 ‘하늘과 인간이 하나’라는 관점에서, 호연지기는 바로 나의 氣라고 했다. 따라서 호연지기를 해치지 않고 잘 기르면 그것이 천지에 충만하고, 한 번이라도 私意(사의)에 가리게 되면 쑥 꺼져 굶주려서 부족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주자는, 호연지기가 없더라도 실천 행동은 道義에서 나올 수 있지만 호연지기가 없으면 결국 疑懼(의구·의심하고 두려워함)하게 되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의 행동에는 가치중립적인 것도 있을 것이고 조건반사적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이 도덕 의지를 지니고 道義를 실천하는 윤리행위의 측면을 중시했다. 그리고 도의의 실천 행동이 의미 있는 결실을 보려면 평소 정직함으로 호연지기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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