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엘더스 그룹’ 일행이 26일 평양에 도착해 2박 3일의 방북 일정에 들어갔다.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도 이날 서울에 도착해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한 3박 4일의 방한 행보를 시작했다. 평양과 서울에서 벌어진 동시다발 외교이벤트가 과연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
○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첫 일정 박의춘 외무상 만나
北, 한두 줄짜리 보도로 전해
26일 한국을 방문해 외교통상부를 찾은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카터 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방북했을 때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첫 대화 상대로 나섰다. 이날 박 외무상이 먼저 나선 것은 북한이 카터 전 대통령 일행과 핵 문제 및 북-미 대화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은 이날 카터 전 대통령 일행의 방북 소식을 ‘한두 줄짜리 보도’로만 전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향후 반전을 통해 ‘깜짝 쇼’를 하려고 자제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차 북핵 위기로 전쟁 발발 위기감이 높았던 1994년 6월 첫 방북을 통해 북-미 간 협상 시작과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대북 식량 원조가 주요 관심사이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 문제 등 여러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17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카터 전 대통령을 충분히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북한 지도부가 28일 서울에 오는 카터 전 대통령 일행에게 남북 간 비핵화 회담 재개 등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 “카터 방북성과 큰 기대 안한다”는 김성환
정부 “카터가 北대변인이냐”… 남북 직접대화 거듭 강조
26일 내외신 기자들에게 남북 현안을 설명하고 있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김 장관의 이날 발언은 북한이 카터 전 대통령이라는 ‘대변인’을 통하려 하지 말고 남측에 직접 대화를 제안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북한이 이미 6자회담 전 남북대화에 나서기로 한 만큼 남북이 빨리 만나 비핵화 진전 조치를 논의하고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의 처리 문제도 매듭짓자는 뜻이다.
북한이 카터 전 대통령을 통해 비핵화 진전과 남북대화 등에 대한 모호한 제안을 내놓아 남한 내부는 물론이고 6자회담 당사국들 사이에 혼란을 초래하는 일을 막기 위해 제3자를 통한 메시지는 진정성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사전 포석을 놓았다는 해석도 있다.
○ “先남북대화 後6자재개” 동의한 우다웨이
“목욕하고 한국왔다” 인사말… 위성락 “나는 이발했다” 화답
26일 한국을 방문해 외교통상부를 찾은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평소 말을 아끼던 우 대표는 위 본부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외교부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에게 “한국이 바라는 남북 대화가 빠른 시일 안에 열리기를 바라고 지지한다”며 “(이어) 미국과 북한이 적당한 시기에 대화를 진행하는 것을 지지하고 이를 통해 6자회담이 성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첫 단계는 남북대화인가’라는 질문에도 “맞다”라고 답변했다.
우 대표는 위 본부장을 만나 인사말을 통해 “중국 옛날 속담에 귀한 손님을 만날 때는 목욕을 한다는 말이 있다. 목욕한 뒤 본부장을 뵈러 왔다”고 운을 떼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위 본부장은 “나는 이발을 했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우 대표는 자신이 북한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인천공항에 도착해 ‘북한의 남북 회담 제안 등을 전달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중국 사람인데 북한의 입장을 왜 전달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