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 내 이야기를 담았죠”
신인 디자이너 선발 프로그램 ‘프로젝트런웨이코리아’ 우승자 3명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센터’에 함께 모였다. 왼쪽부터 1회 우승자 이우경 씨, 2회 우승자 정고운 씨, 3회 우승자 신주연 씨. 아래 사진은 각각의 파이널 패션쇼 메인 의상.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서울시, 온스타일 제공
패션 디자이너 선발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프런코)’. 미국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의 한국판 격인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한국 패션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디자이너를 뽑는 것. 하지만 시청자는 이들이 만드는 옷만큼이나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 포맷에 재미를 느낀다. 매회 미션을 통해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탈락한다. 1등이 되려면 ‘얼마나 옷을 잘 만드느냐’는 기본이다. ‘얼마나 끈질기냐’도 중요하다. “진부한 디자인이 외면당한다”는 사회자의 말은 살벌하리만큼 현실적이다.
○ “쇼가 끝나니 냉혹한 ‘현실’이 보였다”
“늘 시간이 모자란 채 옷을 만들어야 했죠. 잘했든 못했든 주어진 시간 안에 미션을 끝내야 하는 압박감 때문에 잠도 설쳤어요.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보니 이 압박감이 매일매일 오더군요. ‘서바이벌’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인 것 같아요.”
정 씨도 한마디 했다. “‘우승자’라는 꼬리표가 때로는 부담이 됐어요. 천천히 데뷔하고 싶은데 주위에서는 ‘왜 빨리 옷 안 만드느냐’고 재촉하더군요.”
선배 우승자들이 ‘냉혹한 현실’을 꼬집는 것과 달리 갓 우승한 신 씨는 아직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미국 패션스쿨인 FIT 졸업)와 정 씨(프랑스 스튜디오 베르소 졸업)가 해외 유학파인 것과 달리 신 씨는 삼성디자인학교(SADI)에서 공부한 ‘국내파’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결심을 했어요. 아침에는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때는 논현동 자취방에서 옷 만드는 연습을 했죠. 하지만 해외 유학 경험이 많은 동료들을 보면서 스스로 부족하다 자책하기도 했어요.”
이들은 각기 다른 10개 옷을 만들고 매회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에는 단독 패션쇼까지 열었다.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모두 “내 이야기를 옷에 담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건물에 붙은 ‘종이비행기’ 무늬를 보고 감명을 받아 옷을 만든 이 씨,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치유’라는 주제로 옷을 만든 신 씨 모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프로그램 지원 예산으로 4억 원을 책정했다. 3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보완해야 할 점은 없을까. 이들은 ‘지속적인 관리’를 얘기했다. 정 씨는 “우승 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고 말했다. 현재 정 씨는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이 운영하는 신인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공간인 서울패션센터에 입주한 상태다. 정 씨 외에도 프런코 참가자 14명이 이곳에 들어왔다. 시 관계자는 “단순히 옷 만드는 작업뿐 아니라 마케팅까지 센터 교육을 더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패션은 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이들. 지금은 치열한 패션업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자연스레 “화려한 치장이 가득한 옷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것이 우승자 3명의 목표가 됐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