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법지원인제 국무회의 통과 파장
○ 기업 규모 따라 골치 아픈 복병
기업들은 준법지원인을 이중 규제로 단정한다. 최고 의결기구인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상근감사와 사외이사가 존재하는데 이사회가 뽑는 준법감시인이 추가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기업들이 최대 1000개의 ‘변호사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는 매출액 2조 원 이상인 기업을 기준으로 할 때 250개 정도의 일자리만 생긴다고 반박한다.
기업 규모에 따라 우려하는 쟁점은 다르다. 대기업은 대부분 계열사마다 사내 변호사가 있기 때문에 새로 준법지원인을 고용하는 경제적 부담은 덜하지만 경영 절차가 복잡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광고 로드중
가장 골치가 아픈 쪽은 중견 기업이다. 사내 변호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새로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 따른 비용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구인난까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연매출이 1조 원 남짓한 한 중견 기업 관계자는 “몇 년 전 사내 변호사를 한 명 채용했는데 사법연수원을 막 졸업한 신참 변호사들도 대기업을 선호하다 보니 넉 달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 기업 관계자는 “일 잘하는 영업사원 월급의 몇 배를 줘도 변호사 한 명을 구하기가 힘들다. 솔직히 말해 취직 못하는 변호사들한테 일자리를 주라는 얘기로 들린다”고 말했다.
○ 대책 마련 나서는 재계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상 이미 엎질러진 물이므로 반발만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고 대통령령에서라도 부작용을 줄이자는 분위기다. 한 재계 인사는 “기업들이 손놓고 있다가 당했다”며 재계 분위기를 전했다. 변호사단체가 2년 넘게 입법에 공들이는 동안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의 분위기도 이와 같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통령령에 정해질 ‘일정 규모’를 최소화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적용 대상 기업이나 준법지원인의 자격 등이 불합리하게 정해지지 않도록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 기업들은 변호사를 새로 영입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기존 법무팀에는 변호사가 없고 로펌과 계약해 자문을 해왔다. 준법지원인을 신규 채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 변협 “상장사에 필수적인 제도”
변호사업계에서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정준길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이제 제도의 취지를 잘 살려 기업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도록 시행령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대주주의 횡령, 배임으로 부도가 나거나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은 코스닥 상장사는 준법지원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변협은 준법지원인 제도의 적용대상 기업 범위를 △회계감사에서 부정이 발견된 기업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든 기업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기업 등 3가지 기준에 따라 정하자는 주장이다. 특히 코스닥 기업에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코스닥 상장사에는 반드시 준법지원인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욱환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감사처럼) 준법지원인의 독립적인 감시활동을 보장하는 것에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준법지원인을 기업 조직 내에 두는 식으로 시행령을 유연하게 만들거나 준법지원인의 보수를 회사의 형편에 맞춰 자율적으로 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내년 초 제1기 졸업생으로 1500명의 법조인을 한꺼번에 배출할 예정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들도 준법지원인 제도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법률전문가가 기업의 법적 위험을 진단하고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면 기업에 부담이 되기보다는 수익을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고 로드중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