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의 어머니 박복례 씨를 만나다
전북 정읍시의 신경숙 씨 부모 집에는 2005년 열린 어머니 박복례 씨의 칠순잔치 기념사진이 걸려 있다. 6남매 중 넷째이자 큰딸인 신 씨가 부모님 뒤에서 있다. 신현·박복례 씨 제공
위로 아들 셋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그 아래 넷째(첫째 딸)가 중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말했다. “너는 일을 도와라.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면 된다.” 하지만 딸은 “그렇게 꼭 말씀하셔야 되겠느냐”며 울먹였다.
결국 딸은 서울 큰오빠 집으로 올라가 낮에는 일을 하며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펑펑 울었다. 취직자리가 들어왔지만 딸은 “대학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쩔라고 그라냐”며 혼을 냈다. 딸은 “제가 벌어서 다니면 되잖아요”라고 소리쳤다. 어머니는 딸에게는 화를 냈지만 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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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을 부탁해” ▼
정읍 시내에서 차로 10여 분. 한적한 2차로 도로 옆에 10여 가구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동네 사람에게 신 씨 부모님 집을 묻자 “저기 지붕 파란 집”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준다. 좁은 골목을 돌아 대문이 열려있는 단층 개량 한옥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작은 목련나무가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백구 한 마리가 컹컹 짖었다. ‘헛간 옆에 개집이 있었다’는 소설 속 묘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어디서 오셨는가.” 느리게 계단을 내려오던 ‘엄마’ 박 씨는 약속도 없이 찾은 기자를 “집에 없으면 어쩌려고” 하며 맞았다.
한평생 농사일에 전념한 부부는 여섯 자녀를 알토란같이 키웠다. 거실에 나란히 걸린 대학 졸업 사진 중 왼쪽에서 네 번째가 신경숙 씨. 정읍=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 속 어머니처럼 박 씨도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았다. “내가 못 배운 게 한이 돼서 힘들어도 끝까지 자식들을 가르치고 싶었어.” 큰오빠가 서울서 고시 공부를 하다가 가족을 돌보기 위해 대기업에 취직한 것도 소설과 현실이 닮은꼴이었다. 그러나 치매를 앓는 소설 속 어머니와 달리 신 씨의 어머니는 정정했다. 그 얼굴에 언뜻 신 씨의 모습이 스쳤다. 신 씨는 2000년 한 기고에서 ‘사람들이 어머니하고 닮았다고 하면 버럭 화를 내셨다’고 회상했다. “내가 당신을 닮은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당신처럼 살게 되는 것, 어머니는 그것이 싫으셔서 지레 화를 내셨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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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소설의 반응이 좋다고 하자 어머니는 “그런가요”라면서 눈이 커졌다.
“갈 때는 전화 자주 한다더니 바쁜지 (전화가) 자주 안 온다. 얼마 전에는 전화로 ‘9시 뉴스에 나오니까 꼭 봐’ 하더라. 근데 뭐 휙 지나가 버리니.” 신 씨는 지난해 8월부터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남편 남진우 명지대 교수와 함께 뉴욕 컬럼비아대 방문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전화에선 ‘엄마, 늙지 마, 늙지 마’ 하고 말하는데, 내가 뭐 팍 늙어버렸으니….”
5일 미국에서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의 영문판은 5일 출간 첫날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00권에 진입한 데 이어 10일 종합순위 28위까지 올랐다. 국내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는 한글과 영문판이 각각 부문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의 소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 씨는 한 모임에서 “나는 평생 문자의 세계에서 살겠지만 작가인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한 일이 있다. 딸의 책을 읽을 수 없어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어머니는 “그렇지”라고만 했다. ‘엄마를 부탁해’ 가운데 ‘고생하는 어머니’, ‘서울서 공부하는 큰오빠’ 등 얘기를 해주자 “그런 얘기도 나오냐”며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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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르는 딸이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여전했다. 성당에서도 늘 딸을 위해 기도를 한단다. “애가 좀 들어서라고 기도를 한다. (손주가) ‘엄마, 엄마’ 불러주면 얼마나 (딸이) 좋겠나.”
얘기는 한 시간 정도 이어졌다. 두 사람이 들려주는 얘기의 대부분은 ‘착한 딸, 마음 넓은 딸, 글 잘 쓰는 딸’ 신 씨에 대한 칭찬이었다. ‘서운한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혹 딸이 흉잡힐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떠나는 기자에게 “욕 봤스요. 가시면서 드시라”며 두유 음료 3병을 건넸다.
소설 속 어머니는 실종 상태지만, 정읍의 한 농가에서는 신 씨의 어머니가 딸과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정읍=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