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국학연구원 - 마포 성미산 공동체 인문학 강좌 가보니“불혹 아닌 부록 같은 세대 삶에 대한 주체성 찾아야”
과묵했던 ‘아빠’들이 수다를 떨며 자신의 내면을 인문학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40대 남성만을 위한 인문학 강좌 참가자들과 진행을 맡은 40대의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오른쪽에서 첫 번째).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 날 오후 7시 반 옥탑 카페 안으로 직장을 마친 ‘아빠’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의사도 왔고, 공무원 자영업자 그리고 옥탑 카페 주인도 왔다. 강의를 맡은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도 49세다.
‘불혹? 부록?’은 4월 한 달 네 차례에 걸쳐 주 1회씩 진행된다. 5일 ‘생애에게 말 걸기: 스토리텔링’, 13일 ‘10년 후의 나를 보다: 상상일기’, 20일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싱크카페’, 27일 ‘이야기 한마당: 전망 찾기’ 순서로 진행된다.
광고 로드중
그렇게 15분쯤 흐른 뒤 김 교수가 어색한 침묵을 깼다. 나무 팽이를 끈으로 감아 돌렸다. ‘왕년’에 팽이 좀 돌려본 솜씨다. 입을 굳게 다물고 벽만 쳐다보던 40대 남성들의 표정에 순간 ‘아 옛날이여’라는 생각이 스치는 듯 하나둘씩 ‘소싯적 이야기’를 꺼낸다. 팽이 박사, 비석치기 달인들의 확인할 수 없는 추억 얘기에 분위기가 들뜬다.
어느새 참가자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무 책상에 추억의 물건들이 놓여 있고 하나씩 골라잡은 참가자들은 왜 이것을 잡았는지 자신의 생을 곰곰이 돌아본다. 성냥을 잡은 카페 주인 조경민 씨(42)는 “1980년대 그 시절은 모든 카페에 성냥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성냥처럼 점점 잊혀져 가는 게 내 인생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나막신을 잡은 한정훈 씨(42)는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올 때면 해진 신발을 신은 내 모습에 울적해진다”고 말했다. 반쪽짜리 나무 인형을 든 의사 이정희 씨(45)는 “늘 반쪽인형처럼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때문에 쫓기며 살진 않았을까.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말하는 등 각자 자신의 ‘생애에게 말을’ 걸었다.
다소 우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김 교수의 농담. “동창회 가서 40대 친구에게 절대 물어선 안 될 3가지 질문. 첫째는 ‘요즘 뭐 해?’, 둘째는 ‘마누라는 잘 지내?’, 마지막은 ‘애들 공부 잘하냐?’는 질문이다.” 청중이 한바탕 웃고 나서 김 교수는 말을 이었다. “우리 세대의 불안은 윗세대가 살았던 시대처럼 우리가 살지 못한다는 데서 나온다. 아버지와의 괴리보다 내 자식과의 괴리가 더 크다. 이럴수록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한데 이 시대의 40대들은 (그 질문을) 할 여력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광고 로드중
이번 ‘불혹? 부록?’ 인문학 강좌는 기존의 일방적 강의 형식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사업단 김영선 교수는 “자기 경험을 언어화하는 것, 퇴화되어 버린 주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마치 ‘부록’ 같은 존재였던 40대 남성들이 스스로 살아보자며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는 면에서 새로운 인문학적 도전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프로그램이 40대뿐만 아니라 각 세대가 각자의 문제를 스스로 성찰하고 해결해 나가는 일종의 파일럿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관계 맺기와 유지하기’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드는 역할이 시민 인문학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