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식 좋아” 10명보다 “이 주식 안 사” 1명도 없게…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밥캣 문제로 두산그룹이 겪은 홍역은 일종의 IR(Investor Relation·투자자 관리) 실패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IR이 경영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주가 급락으로 단순히 해당 기업과 주주만 타격을 입은 게 아니라 그룹 전체의 신뢰도와 이미지가 손상됐기 때문이다.
결국 두산그룹은 금융시장 및 투자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정립하는 게 사태 해결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란 결론을 내렸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서울대CFO전략과정과 공동으로 밥캣 사태 이후 두산그룹의 달라진 IR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기사 전문은 DBR 77호(3월 15일자)에 실려 있다.
○ IR팀 위상 대폭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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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원과 팀장이 접할 수 있는 사내외 정보의 양과 질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투자자들도 실무자보다는 임원과의 면담을 더 선호한다.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IR팀장을 모두 임원급으로 승진시켰다는 건 실패를 더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명확하게 알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각 계열사의 IR팀장이 모이는 협의체도 만들었다. 두산그룹 IR팀장들은 최소 한 달에 1회 이상 모여 각 계열사가 처한 쟁점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식으로 공조를 취할지 면밀히 준비했다. 증자 사태 때 증자에 참여하지도 않은 계열사의 주가까지 급락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IR 레터 발행도 정례화했다. 위기가 발생하면 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 명의로 IR 레터를 써 ‘현재 상황은 이렇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겠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일부 주요 주주에게만 발송하는 게 아니라 1000명이 넘는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단체로 발송한다.
▼ 최근 기업가치 평가기준 ‘이익’에서 ‘주가’로 변화 ▼
기업 내부 인사보다 금융시장과의 교감이 상대적으로 쉬운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들을 계열사 IR팀장으로 영입했다. 현재 두산그룹 내 전 상장회사의 IR팀장은 모두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이 맡고 있다. 이는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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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해외 투자자들의 공장 견학 형식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꿨다. 실제 두산중공업은 투자자들에게 자사 공장뿐만 아니라 발전소도 함께 보여준다. 공장에서 두산중공업의 완성품인 터빈의 제조 과정을 본 후 이 터빈이 실제 사용되는 발전소를 함께 견학하는 식이다.
투자자가 진짜 궁금해하는 사안은 터빈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 터빈이 발전소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다. 투자자, 즉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이런 연계 투어를 생각해낼 수 있다. 발전소의 소유주인 한국전력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유무형의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손종원 두산중공업 IR담당 상무는 “자주 해외 IR를 나가서 더 많은 해외 투자자를 발굴하고 싶지만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 있다. 우리는 국내에 찾아온 해외 투자자에게 훨씬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IR를 개최하면 회사 소개, 공장의 위치,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 등 다양한 주제를 짧은 시간에 참석자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어렵게 만나도 수박 겉핥기 식 얘기만 나눌 때가 많다. 반면에 해외에서 한국으로 기업 탐방을 오는 외국인투자가라면 이미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가진 사람이다. 그만큼 해당 회사에 대한 관심과 투자 의지가 높다. 따라서 이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한국 기업이 해외 IR를 할 때는 CEO를 비롯한 고위 임원이 대거 참가하면서도, 국내에 직접 찾아오는 투자자들의 응대는 실무자급에게 맡긴다. 손 상무는 “IR 담당자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투자자 집단을 잘 발굴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 내부에 IR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산업재를 생산하는 중공업 분야의 특성상 IR의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하는 직원도 종종 있었다. 특정 부서의 실적이 유달리 좋게 나왔을 때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IR팀이 적극 홍보하려 해도 이익을 많이 낸 사실이 알려지면 고객들이 납품 단가부터 깎으려 든다며 일부 직원은 강하게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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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번의 주가 급락은 없었다
2010년 5월에는 밥캣의 실적 악화 때문에 두산그룹이 추가 증자를 해야 한다는 루머가 시장에 돌았다.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또 급락했다. 하지만 2008년 홍역을 치른 두산중공업은 이번 사태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두산중공업의 CFO인 최종일 부사장은 기관투자가들과 각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추가 증자는 없다고 밝혔다. 주가는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손 상무는 “주식시장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IR의 역할은 ‘이 주식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투자자를 10명 만드는 게 아니라 ‘다시는 이 주식 안 산다’는 투자자가 1명도 없도록 하는 일”이라며 “그래야 안정적인 주가 관리와 시장의 신뢰 형성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 적극적 정보 공시의 4가지 효과
첫째, 공시를 자주 하는 기업일수록 실적 전망의 정확성이 높아지고 주가도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공시를 자주 하면 해당 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발표하는 실적 전망도 정확해진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미래 이익을 더욱 정확히 예측해 현재의 주가에 반영할 수 있다. 해당 기업의 주가 역시 현재의 이익보다는 예측된 미래 이익에 따라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미래 이익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 특정 분기의 실적 악화 때문에 주가가 급격하게 변동하는 일도 줄어든다.
둘째, 기업이 정확한 공시를 자주 해 투자자와 금융회사로부터 신뢰를 얻으면 자본 조달 비용이 줄어든다. 특히 관련 뉴스가 자주 보도되는 대기업보다 공시 이외에는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정보를 자주 접할 길 없는 중소기업일수록 자본조달 비용이 감소하는 효과가 더 크다.
셋째, 부정적인 소식을 적극적으로 미리 알리는 기업은 사전에 소송의 위험을 차단할 수 있다. 중요한 소식을 사전에 공시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 사실이 공개됐을 때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잠재적인 소송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IR가 필요하다.
넷째, 특정 시점에만 잠시 공시를 늘린다고 해서 이런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기업이 무슨 말을 해도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시해야 시장의 반응이 강하게 나타난다. 공시의 빈도와 정확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경영진의 명성도 높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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