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태 前부사장이 본 ‘용인술’
“토사운반 덤프트럭을 몇 대나 가동하고 있나?”
“15t 트럭 10대입니다.”
“현대차 5대, 대우차 5대입니다.”
“적재함 뒤에 문짝 없는 차는 몇 대야?”
“거기까지는….”
“이런 죽도 못 얻어먹을 놈 같으니!”
정주영 명예회장을 25년간 보필했던 권기태 전 현대건설 부사장(79·사진)의 기억 속에 정 명예회장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장을 챙겼다. ‘호랑이 선생님’ 같았다. 그것이 현대건설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권 전 부사장은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명예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선 언제나 ‘희생양’이 나왔다”며 “호되게 당하는 사람은 하나였지만 누구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정 명예회장은 ‘조직의 긴장’이 곧 능률을 올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충성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좋은 성과를 내면 파격적 인사로 보상했다. 권 전 부사장은 1959년에 입사해 6년 만인 1965년에 이사가 됐다. 물론 도태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선후배 관계를 뛰어넘는 인사에 적응하지 못하면 냉정하게 퇴출됐다. 능력이 엿보이면 확실하게 끌어주되 사람을 내보낼 때도 냉정했다. ‘능력 우선’과 ‘현장 제일’은 정 명예회장의 철학이었다.
명예회장은 소학교(현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기억력이 비상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다. 어느 자리든 전문가가 설명하면 정 명예회장은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이해될 때까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