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 가족들이 병원에서 난동을 피워 합의금을 받거나 민사소송으로 가는 길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이 병원에서 시위를 벌이고 의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병원은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2001년 585건이던 의료소송은 2009년 911건으로 8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환자 가족과 의료진 모두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의료관련 소송의 유일한 승자는 변호사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어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 같다. 1988년 의료분쟁조정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후 의사단체와 시민단체의 대립으로 폐기와 재상정을 반복한 끝에 23년 만에 처리된 것이다. 신설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료사고 피해자가 구제신청을 하면 전문의, 법조인, 소비자단체로 구성된 의료사고 감정단이 조사를 벌인다. 이를 토대로 의료분쟁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제시해 양측이 조정안을 받아들이면 의사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생명이 위험하거나 장애가 생긴 경우는 예외다. 불복할 경우 소송으로 가게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