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아래 한솥밥 먹어요… 상생? 그냥 웃지요
한경희생활과학과 하이원전자는 한솥밥을 먹고, 직원 면접을 같이 진행하며, 생산 혁신으로 얻은 이익을 공유하는 등 진정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회사의 상생 협력을 주도한 유영철 한경희생활과학 이사(왼쪽)와 한승범 하이원전자 대표.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같이 살고 먹어야 진짜 식구죠.”(유영철 한경희생활과학 생산본부 이사) “여기저기서 상생을 말하기에 뭔가 봤더니 우리가 계속 해온 일이더군요.”(한승범 하이원전자 대표)
스팀청소기로 유명한 한경희생활과학은 조립생산을 맡은 하이원전자와 특별한 동반자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두 회사는 2008년 9월부터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경희생활과학 본사에서 함께 살고 있다. 밥도 같이 먹고 휴게실도 같이 쓴다. 심지어 하이원전자의 관리자 면접도 같이 진행한다. 한 회사에 다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원이 이해관계에 얽매여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세태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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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한경희생활과학은 고민에 빠졌다. 본사 건물의 남는 공간을 사용하던 업체가 재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새 임차인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국 한경희생활과학은 협력업체를 입주시키기로 결정했다. 여러 협력업체를 두고 고민한 끝에 자사 완제품의 70% 정도를 조립하는 하이원전자에 이주를 제안했다.
이 결정은 양측 모두에 고민을 안겼다. 유영철 이사는 “원청업체와 협력업체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로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시어머니도 마냥 편하지는 않다. 떨어져 있을 때 안 보이던 단점이 눈에 들어와 갈등만 커지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말했다.
한승범 대표는 아예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06년 설립된 하이원전자는 원래 인천에 있었다. 당시 직원의 대부분은 인천 거주 주부였다. 서울로 옮기겠다고 하니 이들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품질을 유지하면서 안정된 생산체제를 갖추려면 숙련공이 꼭 필요했다. 새로운 인력을 뽑아 교육시키려면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에 한경희생활과학은 시세보다 25% 정도 싼 가격에 하이원전자와 임대계약을 했다. 이 덕분에 하이원전자는 새로운 인력을 뽑아 육성하는 데 필요한 유·무형의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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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희생활과학은 하이원전자 직원들이 같은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똑같은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했다. 화장품사업도 같이 하는 한경희생활과학은 명절 때 직원들을 대상으로 화장품 특판 행사를 여는데 두 회사 직원 모두에게 구매 기회를 줬다.
10명 남짓한 하이원전자의 관리자를 뽑을 때도 유 이사를 비롯한 한경희생활과학 측 인사가 동행한다. 유 이사는 “관리자 한 명이 해당 생산라인의 품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정간섭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두 회사 모두를 위해 나도 면접에 참여하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급하게 관리자를 뽑아야 할 일이 생겼다. 최종 면접에 올라온 후보자는 남녀 한 명씩이었다. 경력은 남성 후보자가 더 훌륭했지만 여성 후보자보다 높은 연봉을 요구했다. 이직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었다. 한 대표는 대다수 직원이 주부인 하이원전자의 특성, 더 낮은 연봉 등을 감안해 여성 후보자에게 마음이 갔다. 반면 삼성전자 출신의 유 이사는 더 많은 돈을 주더라도 좋은 경력을 가진 남성 후보자를 뽑아 오래 근무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의 차이를 확인한 두 사람은 오랜 토론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당장 생산라인을 돌리는 게 급하니 이번에는 여성을 뽑고 다음에는 경력이 더 훌륭한 남성을 뽑자.”
▼ ‘명령과 간섭’ 대신 ‘제안과 관여’로 전환 ▼
성과공유제도 실시… 노력따라 몫 더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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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그래픽
동거 1년 후인 2009년 여름. 한경희생활과학의 미국 고객으로부터 급한 주문이 왔다. 납기를 맞추려면 다음 날 아침까지 제품을 부산항에 보내야 했다. 하이원전자의 하루 평균 생산량인 2000대보다 훨씬 많은 3500대를 급히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주부 근로자들은 야근을 무척 꺼린다. 하지만 한 대표는 직원들을 침착하게 설득했다. 결국 하이원전자 직원들은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남아 작업을 마쳤다. 당시 회사에 있던 유 이사는 정문에 있는 한 무리의 중년 남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내를 데리러 온 하이원전자 근로자의 남편들이었다.
한 대표는 “돈보다 신용이 더 중요하다. 한경희생활과학의 미국 고객을 감동시키면 결국 우리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유 이사는 “주부들을 오전 2시까지 일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같이 갈 수 있는 회사라는 확신이 섰다”고 강조했다.
○ 재고 조절과 물류비 절감도 쏠쏠
살림을 합친 성과는 여러 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이원전자가 인천에 있을 때는 월 생산량이 4만 대를 넘지 못했다. 서울로 이전한 후에는 비수기에 월 5만 대, 성수기에는 10만 대로 생산량이 대폭 늘었다. 직원도 두 배 가까이 늘어 80여 명이 됐다.
재고 절감 효과도 상당하다. 같은 건물에서 곧바로 물량 예측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생산 과정에 반영하니 재고가 대폭 줄었다. 물류비도 마찬가지다. 하이원전자가 인천에 있을 때는 인천 내에서도 생산공장과 물류창고가 다른 곳에 있었다. 인천 내에서도 한 번 이동한 후 서울로 와서 제품을 배송해야 했다. 이사를 한 후에는 제품을 엘리베이터에 올려놓기만 하면 배송이 이뤄진다.
문제 해결 능력도 커졌다. 가끔 인쇄업체의 실수로 완성제품에 붙여야 하는 스티커나 제품사용설명서가 기종에 맞지 않게 들어올 때가 있다. 두 회사가 떨어져 있을 때는 이를 발견하고 바로잡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품의 이상 및 결함에 대한 교차 확인이 가능해 문제 발생 자체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 ‘명령’ 대신 ‘제안’… 성과도 공유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의견 대립이 없을 수는 없다. 특히 납품단가를 협상하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두 회사는 이 문제도 ‘명령과 간섭’ 대신 ‘제안과 관여’로 해결하고 있다. 유 이사는 “협력업체에 단가를 낮추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누가 순순히 응하겠나. ‘이렇게 하면 생산비를 줄일 수 있을 듯하니 시행해서 단가에 반영해 달라’고 제안한다”고 말했다.
두 회사는 성과공유제도 실시한다. 생산 혁신을 단행해 원가 절감을 이뤄냈을 때 한경희생활과학의 노력이 더 컸다면 혁신으로 얻은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가고 반대의 경우라면 하이원전자가 더 가져가는 식이다.
한건물에 살기 전에 한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유 이사와 만났다. 이제는 서로 “너무 자주 본다”고 말할 정도로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보낸다. 상생을 고민하는 기업에 어떤 조언을 하겠느냐고 물으니 두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신뢰하는 마음만 끝까지 가지면 된다.”
■ 동반성장 3가지 전제 조건
[1]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협력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빈도가 높고 양방향 피드백 및 적절한 정보 제공 등이 원활하게 이뤄질 때 원청업체의 성과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두 회사 역시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부터 커뮤니케이션의 양과 질이 급격히 증가했다. 두 업체처럼 같은 사무실을 쓰기 힘든 상황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의 빈도를 높이고 정례 미팅을 활성화해 공유하는 정보의 양과 질을 늘려야 한다.
[2] 상호 의존성을 높여야 한다
내정 간섭으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한경희생활과학은 하이원전자 관리자 선발 면접에 참여했다. 혁신을 통한 원가 절감 시 이익도 공유했다. 상호 의존성을 대폭 높여야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우리 회사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공감대가 생겨난다. 상호 이익을 가져오는 투자도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협력관계를 청산하고 싶어도 관계를 청산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더욱 상호 협력에 매진하는 선순환 고리가 생긴다.
[3] 신뢰감이 곳곳에 깔려야
신뢰는 계약서를 쓰거나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일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같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등 사소한 부문에서도 얼마든지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의사소통 시 명령이나 간섭처럼 비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면 상대방도 마음의 문을 연다. 신뢰가 생겨야 커뮤니케이션의 질도 높아지고 운영 및 전략 분야에서의 협력도 가능해진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이창하 인턴연구원(26·서울대 경영학과 4년)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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