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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선재성 판사 파문 계기로 ‘지역법관제’ 다시 도마에

입력 | 2011-03-10 03:00:00

‘향판’ 비율 줄었지만 구설수 꼬리 물어




법정관리 기업의 부적절한 관리인 및 감사 선임 파문의 장본인인 선재성 전 광주지법 파산부 수석부장판사(현 사법연수원 파견 근무)는 법관 경력 21년 가운데 19년을 광주 전남 지역에서만 근무한 대표적인 지역법관(향판·鄕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이 지역법관제의 부정적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도 이번 파문 이후 지역법관제를 전면적으로 수술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술값 대납, 보증 강요’ 구설수 잦아

지역법관제는 대다수 법관이 수도권 근무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경향(京鄕) 교류 인사로 인한 인사이동이 잦아지면서 재판이 부실해진다는 우려를 줄이기 위해 2004년부터 도입됐다. 연고지 근무를 원할 경우 다른 지역으로 전보되지 않고 최소 10년 이상 한 지역 근무를 허용함으로써 다른 법관들이 수도권에 근무할 수 있는 폭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지역법관제가 공식화되기 전인 2003년 말 기준으로 288명이었던 지역법관은 올해 3월 현재 333명으로 전체 법관의 13%에 이른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해당 지역 출신 법관들이 재판을 하면 판결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역 인사들과의 유착 소문이 끊이지 않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영남지역의 한 향판은 특정 술집을 정해 한 달에 100만 원씩 외상 술값을 ‘달아 놓고’ 가까운 변호사들에게 계산하게 해 구설에 올랐다. 또 호남지역의 한 지법 부장판사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내연녀에게 5000만 원의 대출 보증을 서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역 기업인에게 대신 보증을 서게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내연녀의 음식점이 폐업하면서 그 기업인은 대신 5000만 원을 물어줘야 했다는 것. 2009년에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부산고법의 모 부장판사가 소환조사를 받는 등 향판과 관련한 추문은 꾸준히 불거져 왔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법관들이 한 지역에서 오래 한솥밥을 먹다 보니 전·현직 간에 유대관계가 강해 특정 법관이 퇴직해 변호사 개업을 하면 ‘싹쓸이 수임’ 등 전관예우가 횡행한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 ‘향판=낙오자’ 인사시스템 고쳐야

법원 내부에서는 지역법관제가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두드러진 것은 근본적으로 엘리트 판사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경판(京判) 독식 구조’의 인사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관이나 주요 법원장 등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적다 보니 법관으로서의 소명의식이 약해지면서 토착세력과 유착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03년 말 지역법관제를 도입하면서 해외연수자 선발이나 고법 부장판사 승진 등에서 지역법관을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했으나 지방의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인센티브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실제로 1991년 이후 배출된 대법관 40여 명 가운데 향판 출신은 안용득 송진훈 조무제 전 대법관 등 3명에 불과하다.

지방 법조계에서는 이번 선 전 부장판사 사건은 개인의 문제일 뿐 지역법관제와는 무관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구의 한 변호사는 “판사들과 사건 당사자들이 학연, 지연으로 얽히는 것은 수도권이나 지방이나 큰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지역의 실정을 잘 아는 향판들이 진행하는 재판에 당사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대전지역 향판 출신인 한 변호사는 “향판들 중에는 지역 인사들과 끈끈하게 연결돼 있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수도승처럼 사는 법관이 적지 않다”며 “선 전 부장판사 사건 때문에 모든 향판이 부패한 것처럼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지역법관제::

전국의 각 법원에서 순환근무하지 않고 대전 대구 광주 부산고법 관할지 가운데 한 곳에서 퇴임 때까지 계속 근무하는 제도로 2004년부터 시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