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정몽구-구본무 회장도 거액 배상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기업 오너 대상 민사소송 증가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들을 보호하는 데 바람직하다는 평가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상해야 하는 기업들은 대주주의 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 기업들 민사소송서 줄줄이 패소
최근 기업 오너를 대상으로 한 소송은 배임이나 횡령과 같은 형사소송 대신 주주대표소송과 같은 민사소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의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가 났을 때 경영진이 피해액을 회사에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1998년부터 6개월 이상 전체 주식의 0.0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제기할 수 있도록 소송 요건이 완화되면서 주주대표소송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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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기업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은 기업 오너가 경영권 대물림 위해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시가보다 싸게 넘기는 과정을 주로 겨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5일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대주주인 물류회사 현대글로비스에 운송단가를 높게 책정하는 등 부당지원을 한 것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정 회장에게 총 866억 원(이자 포함)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역시 지난달 28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에게 시가보다 90% 이상 낮은 저가로 매각한 데 대해 제일모직 주주 3명이 낸 주주대표소송에서 패소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역시 2005년 한화 S&C 지분을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차장에게 저가에 매각한 데 대해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된 상황이다.
적대적 M&A나 노동조합이 회사 경영진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주대표소송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사모투자전문회사(PEF)인 마르스 1호, 2호 펀드는 샘표식품과 서울레이크사이드를 인수하면서 기존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현대증권 노조는 소액주주들과 함께 현대증권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약 7억 원의 고문료를 지급한 데 대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 기업들 긴장… 우려…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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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주주대표소송 같은 민사소송은 기업 오너가 주식이나 부동산을 시가에 비해 헐값으로 팔아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객관적인 사실만 입증돼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법원은 2006년 이후 판결이 내려진 29건의 주주대표소송 가운데 14건(48%)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려 10% 안팎에 불과한 기업 상대 형사소송에 비해 승소율이 훨씬 높았다.
기업들은 주주대표소송 요건 완화로 우려됐던 소송 남용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특히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중대표소송제는 계열사 경영진의 잘못으로 회사가 손해를 봤을 때 모회사의 주주도 대표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주주대표소송을 남발하면 기업의 적극적인 경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법원이 경영 판단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대주주에 대한 책임 추궁이 남용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경영에서 소외됐던 주주들이 경영진을 견제하고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직접 나서고 있는 만큼 소송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