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는 작년 말 에너지 위기경보(관심 단계)를 발령하여 대형 건물에 대한 난방온도 제한조치 등을 시행하였고, 최근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5일 이상 초과하자 위기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하였다. 주의 단계에는 야간 옥외조명 제한 같은 강제조치는 물론이고 승용차 5부제 등 민간의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 에너지 소비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어려움을 국민이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감에 적극 동참하자는 상징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가 급등해 국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때, 정부가 소비 절약을 강조하고 강제적인 소비 제한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이런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모든 경제주체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유가가 더욱 상승해 강제조치가 강화되기에 앞서 모든 경제주체는 자율적으로 에너지 소비 절약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중동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유가가 더 많이 오르면 더 강력한 강제적 조치가 발동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강제적 조치를 취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에 앞서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왜곡된 에너지 가격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최근 에너지 소비 동향을 보면 전력 소비의 급증 현상이 두드러진다. 경기 회복으로 산업부문의 소비가 증가한 데다 한파의 영향으로 난방용 전력 수요도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결과다. 전력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일시적으로 예비율이 위험한 수준까지 낮아지기도 하였다. 전력 수요가 이렇게 크게 증가한 데는 에너지 가격구조 왜곡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석유를 비롯한 대부분의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한 반면 전력요금은 물가안정 등의 이유로 인상이 억제됐다. 이러한 가격구조하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력으로 에너지 대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전력 다소비 업종이 지속적으로 설비를 증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현재의 에너지 다소비 구조와 왜곡된 에너지 소비행태는 경제주체들의 비합리적인 소비행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격에서 출발한 것이다.
에너지 가격구조를 개선하여 에너지 소비구조가 합리적으로 변화되고 여기에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의식과 실천이 제고될 경우 국제유가의 급등 현상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