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탁환 내 마음속의 혜초바닷길·사막길 누빈 한반도 최초의 ‘배낭족’ 혜초실크로드에서 겪은 이야기 길 안내판 ‘왕오천축국전’
산맥과 산맥 사이에 끝없는 사막이나 암석이 겹겹이 쌓인 고원지대인 총령(파마르 고원). 험난한 길이었지만 실크로드의 한 축으로, 혜초가 이 길을 지날 때 파미르 고원은 당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진 제공 두레
가고 싶은 곳과 갈 수 있는 곳은 다르듯이, 쓰고 싶은 작품과 쓸 수 있는 작품은 다르다. 평생 쓰기를 갈망하지만 끝내 도전을 못하는 작품도 있는 법이다. 내게는 혜초를 소설로 옮기는 일이 그랬다. 스무 살에 처음 ‘왕오천축국전’을 읽었고, 서른 살에 소설 구상을 마쳤지만, 마흔 살에야 집필을 시작한 소설. 20년 동안 대여행가 혜초는 내 앞을 밝히는 등불이자 도전하고픈 거대한 적이었다.
나는 왜 혜초(704∼780년경)에게 매혹되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가 ‘젊음’이라고 아끼는 것들을 통일신라시대의 이 학승이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을 초월한 이 젊음의 장쾌함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혜초의 매력은 그가 쓴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서 뿜어나온다. 세상의 모든 여행기는 ‘열하일기’와 ‘왕오천축국전’ 사이에 놓인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새로움들을 다채로운 형식과 문체로 오롯이 담아낸 것이 ‘열하일기’라면, 그 모든 다양함에서 핵심만 뽑아내어 간명한 단 하나의 형식과 문체로 정리한 것이 ‘왕오천축국전’이다. 또한 혜초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과 여행 중에 전해들은 정보들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적었다. 체험과 견문이 뒤섞여 실제 여정을 파악하기 힘든 몇몇 여행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직함이다.
2007년, 나는 ‘혜초의 길’로 답사를 떠났다. 경주를 시작으로 인도와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타클라마칸 사막도시 쿠차를 거쳐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둔황이었다. 답사는 힘겨웠지만 감히 불편함을 내색할 순 없었다. 우리가 버스와 기차와 비행기로 옮겨간 길들을 혜초는 오로지 두 발로 걸어서 지났다. 가장 추운 땅에서 가장 더운 땅까지, 넓디 넓은 대로에서 인간의 족적이 사라진 길 아닌 길까지. 죽음이 이마를 비벼댈 때도 많았으리라.
혜초는 대부분의 여행기에 그득 차고 넘치는 길 위에서의 희로애락을 담지 않았다. 그 모든 아우성들을 침묵의 영역으로 밀어넣은 혜초는 담담하게 “북쪽으로 이레를 가면” “서쪽으로 한 달을 가면”이라고 적었다. 나는 이 단순한 문장들의 무게를 혜초의 길을 따르며 뒤늦게 깨달았다. 공포와 배고픔과 슬픔을 감추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혜초는 손끝까지 밀려온 감정을 거친 발바닥으로 밟은 채 지나갔다. 이 참기 힘든 고통마저도 수행의 과정으로 받아들인 학승의 젊음이 빛나는 대목이다.
혜초의 길에서 한반도를 떠나온 또 다른 선조들과 조우했다. 둔황석굴은 물론이고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벽화에서도 조우관(鳥羽冠)을 쓴 이들이 나를 향해 서 있었다. 실크로드에서 그들이 겪은 파란만장한 일들을 유장한 이야기로 어서 풀어달라는 소리가 귀에 쟁쟁거렸다. ‘왕오천축국전’은 그 이야기 길의 충실한 안내판이기도 했다.
소설가 김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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