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쫄이' 발레복을 입은 다섯 남자 '개콘'을 평정●남성의 '몸'이 소재, 민망함을 개그로 승화●NG도 코너의 일부분, 우린 당당해
흰색의 타이즈를 착용하고 중요 부위 노출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몸 개그로 단숨에 대한민국을 웃음 바다로 만든 KBS2 개그콘서트 ‘발레리NO’팀(왼쪽부터 김장군, 정태호, 이승윤, 양선일, 박성광) 사진=스포츠동아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요즘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객석을 발칵 뒤집어놓는 코너가 있다. 개그맨 박성광(30), 이승윤(31), 정태호(33), 양선일(32), 김장군(29)이 뭉친 '발레리NO'팀. 기자가 친한 척하며 그들이 방송에서 자주 하는 러시아 인사말을 건넸더니, "발음하기 참 어렵죠?"라며 웃는다.
매회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하얀색 '쫄쫄이' 발레복을 입은 다섯 남자는 타이츠 겉으로 도드라진 주요 부위를 가리기 위해 작은 바(Bar)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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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리허설, 막상 쫄쫄이를 입고 보니…
-코너 아이디어는 누가 냈나요?
"친한 작가분이 흘리는 말로 '발레리노 콘셉트로 해봐'라고 해서 저와 정태호, 양선일이 회의하기 시작했죠."(박성광)
"셋 다 동시에 '방송에서 할 수 있겠어? 수위 때문에 문제 될 거야. 우리가 일본 진출해야 할 수 있어'라며 덮으려했어요. 그런데 정말 아까웠어요. 개그맨들 사이에서 '대박코너는 금방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는데요. 막상 마음 정하고 짜보니 15분 만에 뚝딱 콘티가 만들어지는 거에요. 그리고 제작진에게 보여줬죠."(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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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몸 개그가 소재인 이 코너에 몸 잘 쓰는 저를 추천한거죠. 전화로 동료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는 순간 느낌이 딱! 왔어요. 정작 스토리를 짠 이 친구들은 걱정하고 망설였지만 저는 '해야 겠다'고 바로 결정했죠. 파격적인 콘티에 '대박'을 확신했어요."
-처음 제작진에게 검사를 받을 때는 어땠나요?
"늘 의상 입은 모습을 상상만 했는데 막상 쫄쫄이가 도착했어요. 옷을 반쯤 입다 모두 외쳤죠. '야! 우리 이거 하지말자. 이건 아니다!'라고요. (박성광)
"감독님은 밖에서 부푼 마음으로 새 코너를 기다리고 있는데 안에서는 (민망해서) 모두 나가질 못하는 거죠. 이왕 이렇게 됐으니 '검사만 받자'며 나갔죠."(양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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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송이 걱정되지는 않았나요?
"올라갈 때보다 코너를 끝마치고 내려온 뒤 반응이 걱정이었죠. 선정성 논란, 아무래도 방송이 나가면 파급효과가 크니까요."(양선일)
-만약 재미를 떠나 선정성과 관련한 질타를 받았다면 코너를 내릴 생각도 했나요?
"한국을 떠나려고 했죠.(웃음)"(박성광)
-첫 무대에 섰을 때 객석 반응은 어땠나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어요. '헬스보이' 등 몸을 보여주는 코너를 정말 많이 했는데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죠. 관객들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 전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이승윤)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남성의 신체 주요 부위라는 파격적인 개그 소재로 개그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KBS2 개그콘서트 ‘발레리NO’팀(왼쪽부터 정태호, 이승윤, 양선일, 박성광, 김장군) 사진=스포츠동아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맨 몸 위에 쫄쫄이 의상만 입는 건 아니죠?
"일단 속옷을 입고, 쫄쫄이 의상을 입기 전에 일종의 보호대인 '캡'을 해요. 실제 발레리노 분들도 캡을 쓰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도 쓰죠. 모~두를 위해서요."(정태호)
"저희는 특이하게 '발레용 캡'이 아닌 '격투기용 캡'을 써요. 코너를 준비하면서 최근 제가 격투기 시합에서 사용한 '캡'이 생각나더군요. '캡'을 사용하면 저희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죠."(이승윤)
-막내 장군 씨만 없다던데 캡이 비싸서 안 사준 건가요?
"비싸지는 않아요. 김장군 역할의 재미는 빠르게 뛰는 스피드인데, 캡을 사용하면 느려질까봐 안줬죠. 스피드가 생명이니까요."(이승윤)
"전 정말 악착같이 뛰거든요. 사달라고 매번 조르는데 결국 며칠 전에 받았습니다."(김장군)
-처음부터 캡을 사용했나요?
"제작진에게 검사 받을 때는 이승윤 씨가 없었어요. 그때는 '캡' 대신 휴지를 사용했죠. 화장실에서 엄청 가져왔어요.(웃음)"(양선일)
-현장에서는 '발레리NO'팀이 필사적으로 감추는 부분이 보일 것 같은데요.
"앞에 앉은 관객은 절대 안 보이지만, 옆에는 보이는 것 같아요. 아! 뒤에서 연주해 주는 '이태선 밴드'에 여성 멤버가 한명 있어요. 누나인데요. 유독 저희 코너 끝나면 많은 웃음과 함께 끝없는 박수를 보내시는 거예요.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죠."(박성광)
"그 분이 아직 미혼이거든요.(웃음)"(양선일)
"그래서인지 자리에 따라 관객들 표정과 반응이 모두 다 달라요."(이승윤)
-현장에서 의상 때문에 난감한 적은 없었나요?
"타이츠 의상을 입고 대기실로 돌아가는데 어린이 프로그램 녹화를 끝낸 아이와 엄마를 만났어요. 엄마가 아이 눈을 살포시 가리시더군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다'며 활짝 웃으시면서요."(이승윤)
-실제로 유명 발레리노에게 레슨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네. 용어, 자세 등 기본기 위주로 많이 알려주세요. 감사해서 '코너가 잘되면 선생님 공연 오프닝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싫다'는 듯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어요.(웃음)"(양선일)
"이승윤 씨는 몸 선이 굵고 근육도 탄탄한데 나머지 멤버들은 '아동 몸매'라서 노력은 하는데 아름다운 자태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선생님이 점점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저희가 못 따라가고 있어요."(정태호)
-'발레리노'팀 방송을 본 뒤의 선생님 반응은 어땠나요?
"선생님 본인도 시작할 때 저희와 같았대요. 남자라서 쑥스럽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해요. 첫 방송 후 혹시 불쾌하지 않으셨을까 걱정이 많았거든요. 다행히 '주변에서도 재미있게 봤다'고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놓였죠."(박성광)
-그래도 일각에서는 선정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개그에는 형사 같지 않은 형사, 기자 같지 않은 기자가 나오잖아요. 저희도 발레리노 같지 않은 발레리노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발레를 비하하거나 성적 논란, 이슈를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순수한 모습이나 수치심, 원초적인 감정을 몸 개그 소재로 만든 것이죠. 나쁜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이승윤)
"이승윤 씨는 청문회 오셨어요.(웃음)"(정태호)
KBS2 개그콘서트 ‘발레리NO’의 주인공 정태호, 박성광, 양선일, 이승윤, 김장군(시계방향). 사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몸 노출이 많은 코너라 몸매 관리에 신경 쓰이지는 않나요?
"관객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팔굽혀펴기라도 하고 있으면 이승윤 씨가 화내요. 캐릭터 겹친다고요. 승윤 씨 없는 곳에서 몰래몰래 운동해요."(박성광)
"(이승윤을 바라보며) 아니 박성광 씨가 운동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겹쳐요? 1, 2년 해서 될 몸도 아니고.(웃음)"(정태호)
-주요부위를 가리는 바(Bar)의 길이가 절묘하던데요.
"의도한 거죠. 셋이 들어갔을 때 약간 빠듯한 정도로요. 그래서 전 늘 한쪽 엉덩이가 나와있습니다."(이승윤)
"이상하죠? 힘도 제일 세고 덩치도 크고, 몸으로 밀어도 안 밀리는 이승윤 씨가 엉덩이가 반쯤 나와 있는 건 다분히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정태호)
-이승윤 씨는 '헬스보이' 하면서 여성 팬이 많이 늘지 않았나요?
"네, 그런데 이번 코너를 하면서 팬 연령대가 많이 높아졌어요."
-멤버간 호흡이 정말 중요한 코너인데 어떻게 연습하나요?
"보통 개그맨들은 무대 올라가면서 '힘내자'고 파이팅 하는데 저희는 '살살 하자'고 다짐하며 올라가요. 객석 반응이 뜨거우면 저희도 모르게 연습할 때 살살 차던 바도 너무 세게 차고, 그만큼 더 멀리 날아간 바를 잡으려 정말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렇게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NG가 나서 난감한 적은 없나요?
"제가 뛰면서 소품을 떨어뜨려주는데 너무 빨리 뛰다 엉뚱한 곳에 소품을 놔둔 거예요. 멤버들이 움직일 수는 없고 '어떡하지?' 당황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객석에서 더 큰 웃음이 터졌죠."(김장군)
"저를 가려주는 튼튼한 의자가 갑자기 부서진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아찔했는데 녹화 중 가장 큰 웃음이 나왔어요. 다른 코너는 NG를 내면 맥이 빠지는데 저희 팀은 오히려 큰 웃음이 돼요. 본의 아니게 늘 돌발 상황이 준비된 코너라고 할까요?"(정태호)
▶방송 나가고 아버지는 한숨, 냉담… 어머니만 폭소
-방송이 나간 뒤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평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잘 보고 있다. 힘내라'고 자주 연락하는데 이 코너 시작하고는 전화가 없으세요. 다들 저희 코너가 '대박'이라는데 왜 부모님 연락은 끊겼을까요?"(정태호)
"첫 방송을 기다리는데 부모님과 같이 못 보겠더라고요. 제가 방에 들어가고, 아버지도 조용히 들어가시고, 어머니만 TV 앞에서 박수치며 웃으셨어요. 후에 아버지가 '성광아, 사람들이 그게 재미있나 보더라'라고 말씀하시며 한숨을 쉬더라고요."(박성광)
-코너가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나자 합류를 원하는 동료들은 없었나요?
"정말 많았죠. 김준호 선배는 '원장스키' 캐릭터를 정해왔고, 쌍둥이 개그맨은 '쌍둥스키'라는 이름에 '우린 춤도 된다'며 졸라댔죠."
-아이디어 뱅크는 누구인가요?
"모두가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 걱정이에요. 지금 '아주 재미있다'며 뒤로 미뤄둔 아이템들만 10여개가 넘어요. 서로 자기 생각은 있지만 합의점은 금세 만들어져요."(양선일)
-몸 개그 설정 때문에 자칫하면 흐름과 스토리가 반복될 것 같다는 우려가 있는데요.
"앞으로 스토리의 다양화와 캐릭터의 변신을 꾀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한 회 한 회 기대해 주셔도 좋아요. 실망 안하실 거예요." (일동)
-새 코너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트위터에 '갱년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저희 개그를 보고 웃음으로 털어냈다'거나 '우리 아들도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글을 볼 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박성광)
동아닷컴 이유나 기자 lyn@donga.com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