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에 숨진 50대 여성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에 붙잡힌 남편 이모(50)씨가 15일 오후 서울 용산경찰서에 압송돼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1999년 6월19일 밤 11시 경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이모(51)씨의 집.
다음날 용산구 후암동의 한 다세대주택 1층 단칸방으로 이사할 예정이었던 이 씨는 이사 문제로 아내 윤모(당시 39세)씨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새 방을 구했으니 그쪽으로 가자는 이 씨에게 아내는 '이사 가지 않겠다'며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자 참다못한 이 씨는 부엌에 있던 흉기를 들어 우발적으로 윤 씨의 목을 찔렀다.
다음날 아침이 밝자 이 씨는 부인의 시신을 이삿짐인 것처럼 가장해 후암동 새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에게 '아내는 병원에 있다'고 둘러댔다. 이사한 이후 이 씨는 딸을 놔둔 채 가출해 한 달에 2~4회 정도만 집에 들렀다.
당시 여덟 살이던 딸 이모(20)양은 2~3평 남짓한 이 단칸방에서 시신이 담긴 상자와 함께 12년간이나 생활했다.
어느덧 성년이 된 이 양은 지난 12일 밤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이삿짐을 나르면서 '비극의 상자'에 얽힌 비밀을 발견하게 됐다.
이 양은 경찰에서 "옛날부터 아버지 짐으로만 생각해 시신이 있는 줄 몰랐다. 어렸을 때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아버지가 상자를 테이프로 밀봉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는 이 양의 진술에 따라 이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행방을 추적, 경기도 부천에 있는 지인의 집에 은신해 있던 그를 15일 오전 검거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자백하고 "숨진 부인과 딸에게 미안해 시신을 가지고 있었다. 영원히 시신을 보관하고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 부녀와 같은 건물에 사는 한 이웃은 "이씨는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집세가 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게 부끄러워 집에 찾아오지 못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여린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