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3일 日 강제징용 한인마을 교포 위해 일부 토지 매입 끝내
8일 일본 우지 시 우토로 마을. 다닥다닥 붙어 있는 100여 동의 남루한 주택 중 절반 가까이는 폐가다. 거주민의 고령화 등으로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다. 상하수도 등 이 마을의 생활 인프라는 최악의 수준이다. 우지=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8일 일본 교토 부 우지 시의 우토로 마을. 주민들은 “70년이 지나서야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정부가 3일 우토로 지역의 토지 일부를 매입해 준 덕분에 ‘불법 거주자’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앞으로 이곳을 재개발해 공영주택을 지을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의 30%가 65세 이상 고령자여서 무엇보다도 신속한 사업 추진이 절실한 상황이다.
○ 시계가 멈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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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도와 상수시설 등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는 최악이었다. 하수도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는 데다 지반이 낮아 장마 때마다 수해를 걱정해야 한다. 엄명부 ‘우토로주민회’ 부회장은 “주민의 절반 이상이 지하수에 의존해 살고 있다”며 “수도설치비보다 전기펌프로 지하수를 쓰는 비용이 더 싸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열악한 거주환경은 불법거주 신분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 땅을 소유한 민간 기업에 우토로 주민은 사유재산을 무단 점거한 불법 거주자에 불과했다. 주민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역사를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지자체의 지역개발에서 소외됐고 주민들도 무허가 주택을 개보수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우토로의 현재 모습은 이 같은 악순환이 수십 년째 이어진 결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토로 주민들은 1989년 이 땅을 취득한 부동산회사가 주민 퇴거를 요구하는 명도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2005년 한일 양국 시민단체가 나서 토지 매입을 위한 성금모금 활동을 벌이고 한국 정부도 2007년 토지 매입을 위해 30억 원(약 1억8000만 엔)을 지원하기로 결정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 일본 정부의 신속한 재개발이 과제
한국 정부가 설립한 ‘우토로 일반재단법인’이 이달 초 매입한 토지는 3808.40m²(약 1152평). 시민단체 성금으로 만든 ‘우토로 민간기금재단’이 지난해 1억3000만 엔에 매입한 토지 2753m²(약 833평)와 합치면 우토로 마을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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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선 실태조사와 건축설계, 실제 건축기간을 감안하면 적어도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부족 때문에 일본 정부가 세출을 옥죄고 있는 점도 변수다. 이번에 매입하지 못한 나머지 3분의 2의 토지 소유권을 가진 일본 민간회사와의 개발 협의도 필요하다.
현재 우토로에 거주하는 60가구 180여 명의 주민 가운데 65세 이상은 49명이다. 이들 중에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80세 이상 고령자도 15명이나 된다.
나카무라 슌지(中村俊二) 우지 시 총무부 차장은 “역사적인 문제도 있고 오랫동안 힘든 생활을 해온 분들이기에 가능한 한 빨리 추진하려는 데 이견이 없다”며 “하지만 세금이 들어가는 문제여서 행정기관 간 교섭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의 요시다 야스오(吉田泰夫) 씨는 “한국 정부와 한일 양국 시민들이 힘을 보태 여기까지 온 만큼 이제는 일본 정부가 뭔가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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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토로 마을 ::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일제가 교토 부 우지 시의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징용한 조선인 노동자 1300명이 집단 거주한 곳. 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징용자 일부가 남아 무허가 정착촌을 이뤘고 지금은 징용 피해 당사자 및 가족들을 포함해 180여 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