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국제부 기자
재난과 전쟁 상황도 아닌 평시에 인구의 몇 %가 굶어죽은 지독한 가난, 비(非)왕조 국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실화한 3대 세습, 돈으로 사형수도 석방시키는 부패. 이런 것을 감안하면 북한은 혁명이 벌써 몇 번 일어났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스민혁명’의 향기가 북한에도 날아갈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CIS나 튀니지 이집트에 없는 잔혹함이 이미 북한을 꽁꽁 언 동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민주화혁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연좌제이다. 연좌제는 ‘역적죄인’의 가문을 멸족시키는 중세 봉건의 악랄한 유물로 지금은 지구상에서 북한에만 유일하게 존재한다. 북한은 반체제 행동은 물론이고 체제에 불만만 표시해도 몇 촌 이내의 친척까지 정치범수용소에 끌고 가 죽게 만든다.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연좌제부터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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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철저한 폐쇄정책 때문에 외부에선 북한 내부의 일을 전혀 알 수 없다. 1998년 8월의 송림제철 시위가 대표적이다. 당시 북한은 노동자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다 못해 철을 중국에 팔아 식량을 마련하려던 제철소 간부들을 즉결처형하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인근 탱크부대를 내몰아 무자비하게 깔아 죽였다. 이 사건은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현장의 사진도 없다. 외부와 연결된 인터넷도 없고 언론도 당국의 철저한 통제를 받다 보니 북한 주민들도 해외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다. 북한 사람들에겐 위키리크스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촉발시킨 북아프리카의 시위는 다른 행성의 일일 뿐이다. 아니, 시위가 일어났단 사실조차 알 길이 막혀 있다.
북한 당국은 현재까진 이집트 사태를 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쯤 노동당 선전부에선 “미국에 굴종하는 괴뢰정권에 분노해 이집트와 튀니지 인민들이 떨쳐 일어났다”며 “거스를 수 없는 반미 자주화 흐름 앞에 미제는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준비해놓았을 것이다. 꽃은 얼음 위에선 필 수가 없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