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감독시절 유망주 찾아 육성 일가견대표팀서도 젊은피 중용 세대교체 이끌어전술메모-편지 통해 선수들과의 공감 유도빠른 패스로 경기 장악 스페인축구 롤모델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남자”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안 컵 3, 4위 전을 앞둔 조광래 국가대표팀 감독.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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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만의 아시아 정상에 도전했던 한국은 결국 실패했다. 4년 뒤엔 55년만의 정상 도전이 될 것이다. ‘왕의 귀환’도 아쉬움과 함께 막을 내렸다. 하지만 결코 실패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100%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조광래호의 도전은 충분한 희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011 카타르 아시안 컵에서 한국은 완벽에 가까운 세대교체를 이뤘고, 향후 10년을 이끌고 갈 한국축구 주역들의 빠르고 놀라운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 12월 서귀포 전지훈련부터 시작된 조광래호의 아시안 컵 정상 도전. 한 달 반 동안 대표팀을 전담 취재하며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낀 조광래 감독의 리더십을 정리해본다.
● 조광래 어록
“변화 없는 고인 물은 썩기 마련” -아시안컵 젊은 멤버 대거 발탁하며
“호랑이는 토끼 잡을 때도 최선” -조별 예선 약체 인도전을 앞두고
“경기 지배 선수들에 희망 봤다” -4강 일본전 승부차기 패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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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광래 하면 연상되는 게 있다. 바로 남다른 선수 발굴 안목이다. K리그 경남FC를 이끌 때 그의 닉네임은 ‘유치원장’이었다. 그저 그런 선수들을 최고 실력가로 키워내는데 남다른 감각이 있었다.
2014브라질월드컵까지 내다본 시선으로 선수들을 대거 발굴했다. 단순히 아시안 컵 우승이 목표였다면 2010남아공월드컵 당시 멤버들만 선발했어도 충분했겠지만 선택은 달랐다. “변화 없이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며 새로운 변화를 줄기차게 모색했다.
그 결과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젊어졌다. 10대 손흥민(함부르크)은 말할 것도 없고 주전 대부분이 1985년생 미만의 젊은 멤버들로 구성됐다. 아시안 컵에서 스타팅으로 출격한 지동원도 이제 막 성인(20세)이 됐다.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쌍용’ 이청용(볼턴)과 기성용(셀틱)은 빼더라도 89년생 구자철(제주)과 90년생 윤빛가람(경남) 등 K리그에서 농익은 실력을 발휘해온 기대주들을 우량주로 성장시켰다.
도하 현장에서 만난 일본 닛칸스포츠의 시카마 기자는 “올림픽 팀인지, 청소년 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의 세대교체가 빠른 것 같다”고 갈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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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로 소통하는 리더
조 감독은 K리그 시절이나 대표팀이나 훈련장에서 직접 뛰고, 세세히 지시를 하는 모습은 큰 변화가 없었다. 도하 알 와크라 훈련장에서 모자를 눌러쓴 조 감독이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뛰며 굵은 땀을 흘리는 모습은 외국 취재진에게도 독특한 흥밋거리로 다가온 듯 했다.
남다른 소통 방식도 있었다. 상대 팀 전술을 확인한 뒤 세밀한 메모와 영상물을 통해 각자에게 임무를 줬다. 일명 ‘속성 프로그램’이다. 한 경기를 마친 뒤 다음 경기를 준비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맞춤형 교육이다.
중요한 순간, 편지를 통한 메시지 전달도 흥미로웠다. 조 감독이 노트북으로 손수 작성한 편지는 경기 킥오프 직전, 선수들 개개인에 배달된다. ‘여러 분은 아시아의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죠.’조별예선 3차전인 약체 인도와의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전달된 편지의 첫 구절이다. 한 수 아래의 팀을 맞이해 자칫 따를 수 있는 자만이란 내부의 적을 경계하고, 마지막까지 선수단에 긴장감을 유발시키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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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지배하는 축구
조 감독이 아시안 컵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한 한 마디가 있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지배하는데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스코어나 결과는 상관없었다. 조별리그 2차전 상대 호주와 1-1 무승부를 기록했을 때, 이란과 8강전을 승리한 뒤, 심지어 4강 상대 일본에 무릎을 꿇은 뒤에도 항상 조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봤다. 스스로 재미를 느꼈다. 자랑스럽다”며 거의 비슷한 패턴의 말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변화하는 한국 축구, 세계적인 수준에 발맞춰가는 한국 축구”란 말도 자주 등장했다. 조 감독이 원하는 이상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K리그 감독 시절 때부터 유독 패스 게임을 강조했다. 스포츠동아와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도 조 감독은 “한 템포 빠른 패스로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가 바로 내가 원하는 축구”라고 했다. 스페인 축구가 본질적으로 한국이 따라가야 할 부분이라고도 했다.
물론 조 감독의 원하는 전술과 전략이 100% 이뤄진 것은 아니다. 막 시작됐을 뿐이다. 호주전 이후 “단조로운 공격을 하는 상대를 효율적으로 봉쇄하는데 스리백처럼 좋은 수비는 없다”며 짐짓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시안 컵 엔트리 중 30대가 주축을 이룬 포지션은 수비뿐이다. 대회 준비까지 시간이 부족해 그동안 익숙한 포백을 고수했으나 뉴 페이스 선발이 예고된 만큼 새로운 실험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도하(카타르)|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