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유족 표정’을 다룬 기사에는 “아버지의 사형집행을 전해들은 딸 호정 씨가 놀라면서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에 싸인 채 기자에게 ‘그게 정말이냐’고 한 번 두 번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던 것이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백 명의 군중이 그날 조봉암의 시신을 보기 위해 서대문형무소 앞으로 몰려들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은 이런 보도에 민감했다. 당시 내무부 치안국장은 다음 날 신문사 보도국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 사형수에 대한 기사는 법에 저촉되고 민심을 자극한다며 쓰지 말 것을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언론 자유의 침해라고 비판하며 맞섰다.
사형집행 5개월 전인 1959년 2월 27일자 동아일보는 조봉암에게 사형을 선고한 대법원 최종판결을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판결이 자본주의체제의 지양(止揚)과 사회주의체제의 확립을 주장하는 진보당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조봉암이 북한 돈을 받은 혐의로 간첩죄가 적용된 데 대해 비판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오늘의 대법원은 그 증거가 강압에 의해 수집됐다고 봤다. 판결의 근거가 되는 증거 수집 과정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신문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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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동아일보는 조봉암에게 유리했던 1심 판결이나, 불리했던 최종 판결에 구애받지 않고 선입견 없이 실체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 보루다. 그런데 그 ‘성소(聖所)’에서 독재자의 정적 제거를 용인해주었다. 그게 50년 전 대법원이건, 오늘의 대법원이건 국민 앞에 법원은 하나인데 오늘날 대법원은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자랑할 뿐 누구 하나 역사 앞에 진실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또 50년쯤 후 많은 북한의 자료가 공개되고, 그래서 오늘날의 어떤 대법원 판결들이 다시 조롱받는 일은 없어야겠다. 나는 대법원을 믿고 싶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