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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비옥한 땅, 풍요의 바다 일본인이 꿈꾸던 이상향

입력 | 2011-01-28 03:00:00

■ 도쿠가와 시대의 문화 숨쉬는 日 이바라키 현 가보니




이바라키 현 미토 시에 있는 고도칸은 1841년 문을 연 에도 시대 최대 규모의 종합대학으로 도쿠가와 막부 최후의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어린 시절 수학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제공 이바라키 현청

일본 혼슈(本州) 동부 해안 평야지대에 위치한 이바라키(茨城) 현은 예부터 ‘땅이 넓고 비옥하며, 바다와 산에 산물이 많아 사람들이 풍요롭게 사는 이상향’으로 불렸다고 한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1603∼1868년)를 열고 일본 정치의 실질적 1인자인 ‘쇼군(將軍)’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일족이 대대로 영주를 맡아 온 미토(水戶) 번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미토 번은 쇼군의 후계자를 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3대 ‘로열 패밀리’ 가운데 하나로 막부 정치의 한복판에 있었다.

○ 도쿠가와 시대의 황혼을 느끼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더라도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사적 순례는 이바라키 현 여행의 필수 코스다. 이바라키 현 미토 시에 있는 ‘고도칸(弘道館)’은 도쿠가와 막부 말기인 1841년 미토 번 영주 도쿠가와 나리아키(德川齊昭)가 세운 무사(사무라이) 양성소다.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쇼군에 오른, 나리아키의 일곱째 아들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수학했다. 무사 양성소라고 하지만 유교, 역사 등을 배우는 문관도 양성하던 일종의 종합대학이라 경내에는 공자를 모신 사당이 남아 있다.

고도칸 본관 건물로 들어가면 넓적한 접시를 든 전통 복장을 한 농민 모습의 목각상이 여행객의 눈길을 끈다. 이 접시는 영주가 끼니 때마다 곡식을 길러 바친 농민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올려놓고 농민상에 절을 할 때 쓰였다고 한다.

한겨울 적막감이 감도는 고도칸 경내를 거닐다 보면 정문과 본관의 기둥과 서까래 이곳저곳에 작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9대손으로 막부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던 나리아키가 반막부 세력과 벌인 전투 때 날아와 박힌 총탄 흔적이라고 했다. 반대세력에 패한 나리아키는 결국 가택연금을 당하게 됐고, 고도칸도 메이지 새 정부가 신식 학제를 발표하는 1872년 강제로 폐쇄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이바라키 현을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나무가 있는데 바로 매화나무다. 고도칸에도 수백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이바라키 현의 상징 나무라고 한다. 나리아키도 매화꽃의 청초함을 높이 평가해 영지에 매화나무를 많이 심을 것을 권했다고 전해지는데, 실은 흉년에 그 열매(매실)를 소금에 절여 백성에게 식량으로 먹일 목적도 있었다는 설명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 매화꽃 만개하는 2월 말이 최고


역시 나리아키 치세에 조성된 곳으로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가이라쿠엔(偕樂園)’에도 매화나무가 3000그루 넘게 빽빽이 심어져 있다. 2월 20일부터 3월 말까지 열리는 매화 축제 기간이 매화꽃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인데, 이때는 아리따운 여성 매화 대사들이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고 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축제 기간에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인근 철도에는 임시역까지 설치할 정도라고 했다. 가이라쿠엔 안에는 나리아키가 가신, 문인들과 시와 노래를 즐겼다는 3층짜리 목조 정자 ‘고분테이(好文亭)’도 있다. 고분테이를 둘러보고 나오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대나무밭이 펼쳐진다. 겨울바람이 ‘쏴’하고 댓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졌다.

도쿠가와 막부가 몰락한 지 150년 가까이 되지만 이바라키 현 도처에서 도쿠가와 시대의 유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청 소재지인 미토 시의 게이세이 백화점 커피숍에서 메뉴판을 펼쳤더니 ‘도쿠가와 쇼군 커피’라는 메뉴가 있다. 깊은 향이 인상적인 이 커피의 유래를 이바라키 현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이 커피 메뉴를 개발한 바리스타가 도쿠가와 가문의 후손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양에서 들어온 커피조차 이럴진대 일본 전통술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바라키 현 나카(那珂) 시에 있는 188년 역사의 일본 전통주 생산업체인 기우치(木內)주조가 만드는 일본주 ‘기쿠사카리(菊盛)’도 마찬가지다. 왕실을 상징하는 꽃인 국화의 번성을 바란다는 술 이름에서 도쿠가와 가문과 왕실에 대한 충성은 변치 않겠다는 이바라키 현 사람들의 우직함이 느껴진다. 이 회사는 지역 특산품인 매실을 원료로 만든 전통 매실주로 특히 유명한데, 2009년에는 이 술로 전 일본 매실주 경연대회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바라키=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디자인=김원중 기자 paran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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