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 연봉 고과평점은 어떻게 매기나? A구단의 사례로 보니…
두산 포수 양의지(왼쪽)가 롯데 이대호를 홈플레이트에서 태그아웃시키고 있는 모습. 포수는 홈 태그아웃, 좋은 블로킹, 도루저지를 1번씩 하면 홈런만큼이나 높은 고과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수비가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스포츠동아DB
돈 버는 짭짤한 활약
상대투수 6구 이상 던지게 하면 점수 가중
병살저지 슬라이딩, 안타보다 배점 높아
돈 새는 소리 ‘콸콸콸’
선발 1회 강판 -7점…블론세이브 -10점
사인미스 한번이면 홈런 쳤어도 헛수고
불운조차도 고과에 반영
감독이 인정하는 안타성 호타구엔 1점
기록되지 않는 실책도 협의 통해 감점
이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구단의 주요무기는 고과평점이다. 안타 1개도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고과평점은 기록의 맹점을 보완해, 보다 정확한 팀 기여도를 산정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그래서 때로는 선수의 예상을 빗겨가기도 한다.
한 베테랑 타자는 “홈런·타율·타점 기록이 이전 해보다 좋아졌는데도 고과점수는 낮아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흔히 “프로는 돈”이라고 말한다. 선수들에게 가장 짭짤한 활약은 어떤 것일까. 또 ‘돈 새는 소리’가 ‘콸콸’ 들리는 플레이는 무엇일까. 수도권 A구단의 타자·투수 고과평점표를 통해 이를 살펴봤다.
○프로야구 초창기 고과평점은 허울 뿐
1980년대 해태의 연봉협상을 담당했던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국 총재특보는 “이미 프로야구의 태동부터 고과평점은 존재했다”고 말한다.
이 특보는 “투타 각각 항목이 40여 가지였다. 불펜대기만으로도 점수를 줄 정도로 세분화돼 있었다. 불펜대기가 잦았던 방수원이 의외로 점수가 높아 놀란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는 고과점수의 연봉반영이 미미했다.
당시에는 선동열 같은 국보급 투수도 연봉인상상한이 전년대비 25%로 묶여 있었다. 프런트의 입김이 워낙 강해 구단의지에 따라 몸값이 책정되던 시절이다.
고과평점이 실질적으로 활용되고, 그 항목이 정교해진 것은 연봉인상 상한제도가 폐지되면서부터다. 연봉인상 상한은 1995시즌부터 연봉 5000만원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로 1차적으로 사라졌고, 2000시즌부터는 완전히 없어졌다. 현재 A구단은 타자의 경우 총 128개, 투수는 총 120개 항목으로 고과평점을 매긴다.
타자 총128개 항목을 살펴보면, ‘병살저지 슬라이딩’에도 배점이 있을 정도로 세분화돼 있다. 연봉을 산정할 때는 고과평점 뿐 아니라 KBO 공식기록도 포함되는 만큼, 고과평점은 팀플레이를 많이 고려한다.
실제로 병살저지 슬라이딩(3점)의 배점은 통상타점(2점) 보다 높다. 주자 뒤로 친 진루타(2점) 역시 공식기록에서는 범타지만, 고과평점에서는 통상안타(2점)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A팀 타자들은 상대투수를 6구 이상 던지 게 만들 때도 점수를 확보한다. 7구부터 1점씩 가중되는데, 만약 프로야구기록인 20구를 던지게 한다면, 범타가 되더라도 14점을 번다. 통상홈런(5점) 보다 나은 셈이다. A팀의 한 선수는 “볼넷과 끈질긴 승부를 강조하시는 감독님 의중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무엇보다 배점이 높은 것은 절호찬스(무사·1사·2사 2·3루, 1·3루, 만루)에서의 안타·홈런이다. 만약 역전결승만루홈런을 쳤다면, 통상홈런(5점)과 통상타점(2점×3=6점), 결승타점(5점×1=5점), 통상득점(2점)에 절호찬스안타·홈런(7점) 점수까지 더해 총 25점을 받는다.
○포수는 블로킹이 돈
포수는 수비가 우선이라는 말은 고과평점에도 반영된다. 포수의 수비부문 가·감점 항목은 다른 어떤 포지션보다 다양하다. 호(好)블로킹(3점)과 도루저지(5점), 홈 태그아웃(5점)을 1경기에 1번씩 기록했다면, 홈런 1∼2개도 부럽지 않은 점수를 받는다. 만약 팀 승리 시에는 ‘포수의 좋은 리드’라는 항목으로 5점이 더 붙는다.
반면 패스트볼(-2점)과 패스트볼 시 실점(-3점) 연결, 블로킹 미스 및 타격방해(-2점)를 하면 문책도 크다. A팀 포수는 “고과평점만 봐도 ‘포수는 수비만 좋으면 2할3∼4푼만 쳐도 되는 포지션’이라는 말이 맞다”며 웃었다.
포수의 수비능력은 투수의 고과평점과도 직결된다. 투수는 폭투(-2점) 또는 폭투로 인한 실점연결(-3점)을 기록할 때 감점이 있지만, 포수가 블로킹을 해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투수와 포수의 유대관계는 ‘벌이’에도 중요한 요소다.
○홈런 쳐도 사인미스 한 번이면 공(空)치는 날
감점항목을 보더라도, 역시 팀플레이를 저해할 때 그 폭이 크다. 주자 앞으로 진루불능타를 치면 -2점. 절호찬스 시의 병살타는 -7점까지 내려가는 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점 폭이 가장 큰 항목은 사인미스(-10점)다. A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책임추궁”이라고 했다. 태만한 플레이로 팀 분위기를 저해한 경우도 확실한 처벌이 있다. ‘슬라이딩을 하지 않아 아웃(-10점)’은 사인미스와 함께 가장 감점이 크다. 투수들은 선발의 경우 1회에 강판(-7점), 마무리의 경우 블론세이브(-10점)가 두려운 항목들.
플러스의 달콤함 만큼이나 마이너스의 혹독함도 크기 때문에, ‘적은 감점’은 고과순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통상홈런(5점)으로 1타점(2점), 1득점(2점)을 올려도 총합은 9점. 한 경기(9이닝)를 모두 소화해 이닝당 출장가산점(0.2×9=1.8점)을 챙긴다고 해도 합이 10.8점이다.
하지만 삼진(-2점)과 사인미스(-10점)를 1번씩 했다면 -12점이니, 그 날은 홈런을 치고도 마이너스 통장을 긁은 셈이다. A구단의 한 선수는 “감점이 많은 날은 ‘어제까지 해 놓은 것 다 까먹었다’며 자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선타 아웃 2개, 안타 1개의 값어치로 보상
고과평점은 매 경기 마다 구단기록원이 매기는데, 공식기록만으로는 산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안타성 호타구(1점)’라는 항목은 기록지에 따로 표기를 해야 한다.
이 항목은 불운조차 고과에 반영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2번의 호타구(1점×2=2점)가 통상안타(2점) 1개의 값어치와 같다. 야수정면타구에 아쉬움을 삼켰던 타자들은 작은 위로를 받는다.
A구단 기록원은 “이 항목의 경우 1차적으로는 기록원이 배트 중심에 맞은 타구였는지를 판단한다. 하지만 덕아웃 분위기로도 알 수 있다. 아웃이지만, 감독님께서 ‘나이스 배팅’이라며 박수를 치신다면 당연히 호타구”라고 했다.
사인미스나 태만한 백업플레이(-2점) 또는 펜스플레이(-3점) 미숙 등 ‘기록되지 않는 실책’들은 코칭스태프와의 협의를 통해 반영한다.
A구단기록원은 “사인미스는 기록원도 대충 눈치 채고 있지만, 코칭스태프에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때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여쭤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애환을 전했다.
A구단의 한 내야수는 “우리 팀 얘기는 아니지만, 분명 승부를 볼 수 있는 타구 임에도 실책으로 기록될까봐 적극적으로 따라가지 않은 선수도 있다. 이 경우 선수·코칭스태프는 태만한 플레이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고 했다. 감시자(?)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감점의 당사자가 섣불리 ‘오리발’을 내밀 수는 없다.
이렇게 매 경기의 점수가 쌓여 한 시즌이 끝나면, 고과 1·2등 선수는 1500점 내외를 확보한다. ‘몇 점 당 얼마’라고 정해진 공식은 없다. A구단은 투·타별 고과평점의 총합을 구한 뒤, 특정 선수의 평점이 총합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구한다.
그리고 이 비율에 따라 연봉인상분을 정한다. 물론 고과평점 뿐 아니라, 연차와 이전시즌 연봉 등도 고려대상이다. A구단 관계자는 “고과항목이 불펜투수들에게 불리하게 구성돼 있다는 선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2011시즌에는 이를 개선하기로 했다. 4∼5년 전 주니치의 고과항목을 보면, 지금의 우리보다 더 세분화 돼 있다. 정확한 반영을 위해서 다양한 고과항목은 필수”라고 밝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