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대/ 국제부 차장
그로부터 21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한국에 온 중국인들은 한국의 화장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코끝을 찌르는 악취 대신 향기가 솔솔 풍기고 감미로운 음악까지 흘러나오며 안방처럼 깨끗한 화장실을 보고는 중국인들은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중국인들은 더는 한국의 화장실에 감탄하지 않는다. 베이징이나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에 사는 중국인이라면 한국과 비슷한 화장실이 중국에도 이제 널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부러움과 시샘 어린 눈으로 ‘한강의 기적’을 바라보던 때와는 천양지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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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이 부쩍 커진 중국은 최근 ‘용트림’을 하고 있다. 미처 괄목상대(刮目相對)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한국인들은 중국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불편하다. 특히 천안함 폭침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중국이 보여준 ‘북한 감싸기’는 중국에 호의적인 한국인마저 실망시켰다. 이에 따라 한중 양국 관계가 냉랭해진 것은 물론이고 한국인이 중국에 느끼는 호감도도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은 애써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중국의 부상을 한국이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중국의 부상과 우리의 호불호(好不好)는 별개의 문제다. 중국은 경제력에서 이미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꼽히는 강대국이다. 군사력이나 소프트파워에서는 아직 미국에 뒤처지지만 아시아에서는 단연 1위다. 주변국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완력에 굴복해 굴욕 외교를 펼치자는 건 절대 아니다. 달라진 국제환경을 직시하고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하자는 것이다. 한미동맹만으로 민족의 생존과 국가의 장래를 담보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나아가 가치동맹인 한미동맹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 한중 협력은 서로 배타적인 게 아니다. 양립하고 공생할 수 있는 관계다. 앞으로 미중 양국의 핵심 이익이 상충할 때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주위에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너 친중파(親中派)지”란 질문을 받곤 한다. 그리고 이를 부인(否認)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베이징에서 특파원을 지낸 필자로서는 괴로운 일이다.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나 중국과 소통해야 하는 대중(對中)라인의 외교관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인들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될 나라가 있겠는가. 좀 더 냉정한 자세로 길게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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