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에는 악마, 선수에겐 천사… 스포츠시장은 그를 중심으로 돈다
영화 속 제리 맥과이어(아래사진 오른쪽)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스포츠 에이전트.그는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실천해 성공을 거머쥔다.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위 사진 가운데)는 에이전트계의 살아 있는 전설. 하지만 “스포츠를 지나치게 상업화했다”는 비난도 받는다. 2001년 12월 보라스가 당시 고객이었던 박찬호(오른쪽)의 텍사스 입단식 때 함께 찍은 사진. 왼쪽은 알렉스 로드리게스(현 뉴욕 양키스). 사진 제공 소니픽쳐스
영화 도입부. 그의 독백이다. 그의 전화기는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울린다. 때로는 달콤한 말로 고객을 유혹하지만 필요하다면 윽박지르며 협박에 가까운 설득도 잊지 않는다. 하루를 1년같이 사는 남자. 영화 ‘제리 맥과이어’(1996년)의 주인공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얘기다.
○ ‘몸값 거품 제조기’와 영웅 사이
제리 맥과이어를 보면 오버랩되는 인물이 있다. 스포츠 에이전트계의 ‘살아 있는 전설’ 스콧 보라스(56). 한 미국 언론은 영화가 나온 뒤 “맥과이어를 보면 보라스가 떠오른다. 세련된 외모와 유창한 말솜씨, 일에 대한 열정이 닮았다”고 했다. 지독한 일벌레란 것도 둘의 공통점. 맥과이어는 항상 고객 주변에 있다. 선수를 지켜보고 관리하고 홍보하느라 24시간이 부족하다. 보라스도 마찬가지. 에이전트 초년병 시절 며칠 동안 구단 단장을 기다려 설득해 대형 계약을 성사시킨 이야기는 유명하다.
보라스의 별명은 ‘악마의 에이전트’.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미움받는 남자’로도 불린다. 맥과이어 역시 구단으로부터 “선수 몸값에 거품을 끼게 만들었다”는 질책과 함께 싸늘한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선수들에겐 누구보다 따뜻하다. 맥과이어의 따뜻함에 감동한 티드웰은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 “맥과이어는 나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운다.
○ 일 그리고 가족
영화 속 맥과이어와 달리 선수와 인간적인 유대를 계속 유지하기엔 보라스는 고객이 너무 많다. 보라스 사단엔 추신수(클리블랜드)를 비롯해 유명 메이저리거만 170명이 넘는다. 맥과이어는 티드웰이 “Show me the money(나에게 돈을 벌게 해 달라)”라고 외치자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스꽝스럽게 따라 외쳤지만 보라스는 선수들까지 쥐고 흔들 만큼 막강한 지위를 누린다. 보라스는 메이저리그 전체를 돈으로 물들였다는 불명예도 짊어지고 있다. 그가 에이전트 초창기 강조했던 인간적인 유대는 퇴색됐다는 비난도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이들을 연결해주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 바로 가족. ‘최고의 친구지만 최고의 애인’은 될 수 없었던 맥과이어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보이드를 만난 뒤 사랑에 눈을 뜬다. 인간관계의 소중함도 그녀를 통해 다시 배운다. 3명의 자녀를 둔 보라스가 밝힌 인생의 목표는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 가장 기억에 남는 계약을 묻는 질문에 보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내와의 결혼이죠. 고도의 전략과 오랜 기간 협상 끝에 나온 최고의 계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