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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문대연]바다거북 수명연장의 비밀

입력 | 2010-12-30 03:00:00


 

바다거북을 소재로 한 만화영화가 개봉됐다. 한국의 바다에서도 열대와 아열대 해역에서만 있을 법한 바다거북이 요즘 많이 발견된다. 우리 문화 속에 오래전부터 함께한 바다거북이지만 과학적 접근은 최근에서야 시작됐고 이들의 분포와 생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10월 21일 전남 여수 돌산의 정치망에 포획된 푸른바다거북 한 마리를 인공위성 표지표를 부착한 후 방류했다. 이 거북이 어디에서 겨울을 보내는지, 동면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조사를 통해 제주도에서 바다거북이 겨울을 보낸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바다거북이 부쩍 많이 발견되는 남해안에서 이들의 생태를 살피기로 했다. 연구소에서 붙인 이 거북의 이름은 ‘전남이’다.

바다거북은 수천 km의 장거리를 이동할 능력이 있어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바다로 가면 그만이므로 동면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들의 동면에 대한 목격담과 실험실에서의 관찰, 야생에서의 조사로 수온이 15도 이하로 떨어지면 거의 먹지 않고 해저에서 수면을 취하다가 수 시간에 한 번씩 수면으로 올라와 숨을 쉬고 내려가는 바다거북식 동면을 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바다거북 전남이는 방류하자마자 따뜻한 남쪽 바다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6일 뒤 제주도 북쪽 해안에 도달했다. 연구진은 전남이가 제주도 수역에 머물면서 겨울을 지낼 것으로 예측했지만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 25일 현재 홍콩 부근 해역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마도 이 거북은 여기서 겨울을 보내고 날씨가 풀리면 북쪽으로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온대에 사는 많은 동물은 혹한기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동면을 한다. 에너지를 아껴 살아보겠다는 생존전략인 셈이다. 바다거북 역시 남쪽으로 이동해 추위를 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면을 함으로써 살아남는다. 동면 현상이 에너지 절약 차원을 넘어 수명 연장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됐다. 동면을 거친 다람쥐는 그렇지 않은 다람쥐에 비해 수명이 두 배로 길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자연히 활동할 시간이 길어지는 이치다.

동면 외에도 지금까지 알려진 거북의 장수 비결은 한마디로 ‘슬로 라이프’에 있다. 무엇이든지 잘 먹는데 한 번 먹고 나면 수개월까지 버틸 수 있도록 물질대사가 느리다. 또 자라면 천적이 거의 없어 비명횡사할 가능성도 적다.

바다거북이 어릴 때는 물고기 등 천적이 많지만 다 자라면 단단한 등딱지 때문에 상어 외에는 대적할 만한 동물이 거의 없다. 편식하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다. 거북은 종류에 따라 다 자라면 해조류, 산호, 해파리 등 특정 먹이만 먹는 종도 있지만 먹이가 부족하면 다른 먹이도 먹는다. 바다에서는 상황에 따라 먹이가 부족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바다거북은 이럴 경우 상당 기간을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 체내 물질대사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수명 연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꿈의 실현을 돕겠지만 바다거북의 삶에서도 배울 게 많다. 입에 맞는 음식만 욕심 부리지 않는 일, 느리게 살아가면서 시간과 조화하는 일, 동면하듯 몸에 휴식을 허락하는 일이다. 남쪽으로 내려간 전남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모든 걸 잊고 쉴 수 있는 동면이 허락된다면 한 해의 피곤을 해소하고 내년 초에는 새로워진 몸과 마음으로 더욱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겠다고 상상해 본다.

문대연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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