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욱 교수, 한시 17편 분석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전남 강진에서 13년째 유배생활을 하던 1813년에 그린 ‘매화쌍조도’는 조선시대의 부정(父情)을 드러내는 대표적 미술작품이다. 다산은 아내가 보내온 색 바랜 다홍치마에 매화와 참새 한 쌍을 그려 한 해 전 시집간 딸에게 보냈다. 오랜 유배생활의 역경 속에서도 딸에 대한 애정을 억누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한양대 학부대 박동욱 교수(한문학)는 조선시대 아버지들이 딸에 대한 사랑을 담았던 한시 17편을 모아 풀이한 글 ‘고사리 손으로 먹 장난치던 네가 그립구나’를 내년 1월 초 나오는 한국학 계간지 ‘문헌과 해석’(겨울호)에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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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선호 의식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도 나타난다. 영조 때 이조좌랑 심익운(沈翼雲·1734∼미상)은 ‘못난 아들 반드시 어진 딸보다 나은 건 아니니/못난 아비 평생토록 이 애에게 의지하리’라고 썼다.
예뻐하던 딸이 시집을 간 뒤 근친(覲親·어버이를 뵙는 일)하러 친정으로 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몸도 달았다. 광해군 때의 유학자 김우급(金友伋·1574∼1643)은 ‘딸아이가 친정 오는 것을 기다리며’에서 혹시나 딸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문턱이 닳도록 대문을 드나들던 일을 숨기지 않는다.
여식을 다른 세상으로 앞세워 보낸 아비들은 목 놓아 울었다. 숙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이현석(李玄錫·1647∼1703)은 단옷날 선영에 제사를 지내다가 어려서 죽은 딸아이가 묻힌 곳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20년이나 흘러 묻은 장소가 어딘지 가물가물하니 더욱 가슴이 아렸다.
정조 때 문신 박윤묵(朴允默·1771∼1849)은 딸의 대상(大祥·사망한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이 지나자 사위가 재혼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딸이 눈물겹게 더 보고 싶었다. ‘외손자에게 새엄마가 생긴 일은 다행’이라면서도 사위를 축복해 줄 수도 없다며 딸의 혼령이라도 자신의 애절한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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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