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내내 ‘국방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정작 개혁의 내용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논란만 일으키는 ‘말잔치’로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노무현 정부가 세운 ‘국방개혁 2020’을 고치고 싶어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008년 2월 국방개혁 2020의 보완을 핵심과제로 선정했고, 정부 출범 이후 국방개혁은 줄곧 ‘화두’가 됐다. 올해 3월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이 대통령은 국방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5월 첫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국방개혁 2020 계획부터 모든 것을 현실에 맞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10월에는 “국방개혁의 적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재촉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군 복무기간을 21개월로 동결한 것 외에는 아직 없다.
이처럼 국방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은 무엇보다 국방개혁을 책임지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정부 내 조직 사이에 주도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이라는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군 관계자는 24일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국방개혁을 담당할 조직을 신설해 개혁안을 만들어보라고 했지만 정작 개혁안을 확정할 권한은 주지 않았다”며 “개혁을 담당할 주체도 시시각각으로 바꿔 혼란만 가중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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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점검회의, 2개월 논의한 국방개혁안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
주도권 빼앗긴 軍 “그저 참고사항”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은 지난해 1월 장수만 당시 조달청장을 국방부 차관으로 발탁하면서부터 본격화하는 듯했다. 장 차관(현 방위사업청장)에겐 ‘개혁의 전도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그해 12월에는 홍규덕 당시 숙명여대 교수를 국방개혁실장으로 발탁하면서 국방개혁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어 같은 달 국방개혁의 밑그림을 그릴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신설됐다. 당초 대통령 직속으로 두려고 했지만 국방부가 개혁을 주도하겠다며 국방부 장관 자문기구로 출범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군이 국방개혁을 주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3월 천안함 폭침사건이 발생하면서 군은 국방개혁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바뀌었고, 5월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라는 조직이 추가로 생겼다. 대통령안보특별보좌관 자리도 신설됐다. 국방개혁의 주도권이 국방부에서 청와대로 옮겨진 것이다.
안보점검회의는 8월 2개월여의 논의 끝에 다양한 국방개혁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당사자인 군은 “안보점검회의는 말 그대로 자문기구여서 개혁안은 구속력이 없다”며 점검회의의 결정에 힘을 뺐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서도 “안보점검회의 안은 그저 참고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안보점검회의의 건의안을 넘겨받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는 논의 끝에 이달 6일 이 대통령에게 71개 국방개혁 과제를 건의했다. 이를 두고도 국방부는 “말 그대로 건의”라고 평가절하했다. 국방개혁의 주체는 군이라는 인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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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안보 전문가는 “대통령 임기 말에 다가가는 상황인 만큼 이제라도 서둘러 국방개혁을 실천으로 옮기고 군도 개혁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