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창의·인성교육을 슬로건으로 내걸 만큼 창의성은 교육계의 화두가 돼 있다. 이에 대해 거창한 담론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보면 창의성 교육은 거북이와 ‘성큼성큼’을 짝지은 것도 의미 있는 답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하나의 공인된 답을 익히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 생각의 타당성을 따져보고 다른 사람의 견해와 비교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창의력은 자연스럽게 길러지게 된다.
탄탄한 지식이 創意의 바탕 돼
창의성을 길러준다는 영재교육원의 입학은 대다수 부모의 로망이다. 학교에서 관찰 추천된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교육청 부설 영재교육원의 선발시험은 사교육 유발 가능성 때문에 지난해부터 수학과 과학 지식을 직접적으로 묻지 못한다. 그 대신 유창성과 독창성 등을 평가한다는 명목하에 난센스 같은 문제들이 출제되기도 한다. 올해의 경우 나무와 관련된 부정적인 단어와 사람 등을 적고 문장을 만드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어떤 학생은 나무와 관련된 부정적 단어로 ‘나무란다’, 사람으로는 ‘식물인간’이라고 답해 채점자를 요절복통하게 만들었다. 사교육과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교과부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이런 식의 문제로는 수학과 과학 분야의 창의적 영재를 뽑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내용에 초점을 맞춘 기존 영재 선발 문제보다 학원을 통해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준비될 수 있기 때문에 사교육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창의성 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교과부의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수능과 교육방송(EBS)의 연계에 대한 집착이다. 수십만 수험생이 범국가적인 수험준비서가 된 동일 EBS 교재에 집중하고 있으니 학습 내용과 방법에 있어 다양성 대신 획일성이 지배하게 되고, 학생에게 발현돼야 할 창의성은 대학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입시 전형에서 발휘되고 있다.
탈무드의 가르침에 따르면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방법은 바다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다를 그리워하면 자연히 바다에 갈 것이고 거기서 물고기 잡는 법도 모색하게 될 테니 가장 원천적인 방안이 된다. 창의성 교육도 바다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데서 시작될 수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의 하나는 교과 내용의 경감이다. 현재의 수업에서 교사는 교과서에 빼곡히 들어찬 지식을 전달하느라 분주하고, 학생들은 교사가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정리해 전달하는 내용을 수용하기에 바쁘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에 등장한 ‘less is more’라는 표현은 적은 것이 더 많다는 모순적인 뜻을 담고 있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적은 내용을 충실히 배우는 것이 결국은 더 많이 배우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일단 교과 내용의 양이 적당해야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고 탐구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토론이 가능해져 창의력이 길러질 여지가 생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2009 개정 교육과정’이 교과별 교육과정에 요구하는 내용의 20% 감축은 올바른 방향이다. 물론 이는 모든 학생을 위한 일반 교육과정에 국한된 논리이고, 영재교육 차원에서는 현재보다 훨씬 더 폭넓고 심화된 교육이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지식이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의력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인적자원이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이다. 교과 내용에 기반을 둔 창의성을 강조하되, 일반 학생들을 위한 교과 내용은 감축시켜 다양한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창의성 교육을 활성화시키는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박경미 객원논설위원·홍익대교수·수학교육 kpark@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