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 일을 못잊는데… 국가는 우릴 잊었나”
16일 전북 전주시의 한 찻집에서 만난 동갑내기 천안함 생존 장병 강태양 씨(왼쪽)와 전준영 씨. 전 씨가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전역을 앞두고 최원일 전 함장과 다정하게 포옹하며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전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3월 26일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이 백령도 해상에서 북한의 어뢰를 맞고 침몰하면서 46명의 꽃다운 장병이 희생됐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지 9개월이 지난 현재 생존 장병 58명 가운데 6명이 아픈 기억을 안고 전역했다. ○ 살았지만…지워지지 않는 참상
해상병 542기 동기들 중 혼자 살아남은 전준영 씨(23)는 5월 전역 후 원광대 사회체육과에 곧바로 복학했지만 최근 휴학계를 냈다. “사고 충격 때문인지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전 씨는 ‘축구 에이전트’가 되고 싶다던 꿈도 버렸다. ‘무서울 게 없던’ 그였지만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우울증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전 씨는 “학교 갔더니 사람들이 나를 보고 ‘천안함 장병’이라고 수군대서 부담스러웠다”며 “요새는 집에만 있다. 지쳤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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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잊혀가고 있다”
군은 9월 전사자 유가족과 생존 장병 지원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내년 2월까지 사후관리 업무를 맡는다고 발표했다. 생존 장병들에게는 군 병원에서 6개월 동안 무료 진료를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전역 장병들은 “고맙긴 하지만 형식적인 관리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생존 장병 중 가장 큰 부상을 입은 신은총 씨(24)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5개월여 치료를 받았다. 최근 그는 엄청난 의료비에도 불구하고 민간의료시설로 자리를 옮겼다. 신 씨는 “군 병원은 수술도 잘 안 해주고, 불면증이라고 하면 수면제를 주는 것으로 끝이었다”며 “민간병원에서 ‘진작 수술했으면 상태가 훨씬 빨리 호전됐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무척 속이 상했다”고 했다.
최 씨와 강 씨는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최근 “외상은 단기간에 치료 가능하고, PTSD 발병 가능성이 낮아 국가유공자 자격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몹시 화가 났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는 그날을 못 잊는데, 국가는 벌써 우릴 잊은 것 같다”며 허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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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그 후 그 사람들은…
현역에 있는 52명의 생존 장병은 평택함대와 해군본부, 진해함대 등에 흩어져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은 김동식 전 2함대사령관 등 4명과 함께 입건됐다. 천안함 침몰 책임을 물어 이들의 기소를 검토하던 국방부 검찰단은 11월 형사처벌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최 중령은 6월 다른 생존 장병들과 함께 보직을 옮겼다. 해군본부를 지원한 최 중령은 본부 산하 해군역사기록관리단 기록물 담당을 맡게 됐다. 한동안 통원치료와 검찰조사를 받느라 업무는 거의 손대지 못했다. 김덕원 전 천안함 부함장은 본부 국제해양력심포지엄TF 계획담당이라는 새로운 보직을 맡았다. 생존 장병 대부분은 육상 업무로 보직을 바꿨지만 5, 6명은 바다에 남았다. 한 예비역은 그들이 “바다에 남아 전우들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국민성금 일부로 ‘천안함재단’을 발족한 46용사 유가족들은 최근 연평도 포격 도발 전사자 유가족들에게 조의금을 보냈다. 제주 해상에서 침몰한 고속정 사고 유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조문하고 조의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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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동영상=생존장병들이 겪게 될 심리적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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