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진 사진역사硏소장 “지운영 사진 2점 첫 확인”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가인 지운영(1852∼1935)이 1884년 찍은 고종의‘어사진(御寫眞)’이 처음으로 확인됐다.지금까지 고종을 처음 촬영한 사람은 미국인 퍼시벌 로웰로만 알려져 왔다. 최인진 사진역사연구소장은 지난 3년간 고종 사진을 재현해 촬영하고 국내외 문헌을 추적해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최근 출간한 ‘고종, 어사진을 통해 세계를 꿈꾸다’ (문현)에서 이를 소개했다.》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찍은 고종 사진(왼쪽)과 지운영이 찍은 사진들. 지운영은 그림으로 그린 어진과 같은 분위기가 나도록 고종을 정면에 앉히고 계단에 카펫을 깔아 실내 분위기를 연출했다(가운데). 오른쪽은 지운영이 촬영한 것으로 밝혀진 창덕궁 농수정 배경의 왕세자(순종) 사진. 사진 제공 최인진 사진역사연구소장
일본 유학 무렵의 지운영.
고종 어사진은 당시 첨단기술인 사진을 국내에 알리는 신호였지만 실록과 같은 공식 문서에는 관련 기록이 없다. 최 소장은 당대 정치가 윤치호의 일기에서 단서를 찾고 추적을 시작했다. 윤치호의 일기에는 ‘1884년 3월 10일 11시경에 사서기, 로웰과 같이 예궐하여 어진·세자궁(순종) 어진을 촬영하고 오후 5시경에 물러나 공사관으로 돌아오다’, ‘1884년 3월 13일 로웰 및 사서기와 예궐하여 어진을 촬영하다. 이날 지설봉(지운영)도 어진을 촬영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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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소장은 계단에 깔린 카펫 등 다른 소품은 다 같아 로웰의 사진과 촬영자 미상의 사진이 비슷한 시기에 촬영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의자가 있고 없음, 빛의 입사각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촬영자 미상의 사진을 지운영의 사진으로 분석했다.
게다가 이 2장의 사진은 지운영의 독특한 시각이 묻어 있어 로웰의 사진과 분위기가 달랐다. 서양인인 로웰은 고종을 세워 둔 채로 찍거나 풍경 속에 작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찍었지만, 지운영은 그림으로 된 정통 어진의 영향을 받아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기존 어진의 분위기가 나도록 했다.
최 소장은 “지운영은 시야가 탁 트인 남쪽과 서남쪽에서 비치는 오후의 광선을 이용해 정면으로 앉은 고종의 용안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화려한 카펫으로 섬돌의 난간을 덮어 계단이 아니라 실내처럼 보이게 하는 등 정통 어진과 사진 기술의 조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고종과 왕세자의 사진과 관련한 국내외 문헌을 통해 추가적인 사실도 알아냈다. 지운영이 왕세자의 사진을 그해 3월 13일 촬영한 것은 왕세자의 생일(3월 5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토대로 밝혀냈다. 또 최 소장은 임금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는 뜻으로 ‘어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1890년대 그리스도 신문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현재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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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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