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잘 봐라’ ‘떨지 말고 침착해라’ 같은 상투적인 내용으로 채우기는 싫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나 퇴근 후에 책상에 앉아 1년 동안 학생 개개인과 함께 나눈 추억을 곰곰이 떠올렸다.
‘○○야,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던 네가 학기 초에 방에서 컴퓨터를 치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한 해 동안 게임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고생 많았다. 너의 노력이 내일 시험을 통해 결실을 맺기 바란다. 기도할게….’
수능 6일 전인 12일 경기 안양시 성문고 3학년 8반 교실. 스크린에 이 학급 학생들의 1년 생활 모습과 수능장의 생생한 분위기가 담긴 영상물이 상영됐다. 대학생이 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수능 응원 메시지도 나왔다. 학생들은 담임인 이규철 선생님이 준비한 떡볶이와 김밥을 먹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약 1시간 분량의 이 손수제작물(UCC)은 이 선생님이 수험생 제자들을 위해 몇 년에 걸쳐 만든 것. 수년 동안 수능일이면 새벽부터 수험장에 나가 수험생들의 마음가짐과 분위기를 캠코더에 담았다. 수능을 치르는 제자들이 수능일의 긴장감을 간접 경험해 실제 시험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북 군산제일고 소명섭 선생님은 2006년부터 매년 가을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고 있다. 소 선생님이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입시를 앞둔 제자들에게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였다.
올해는 시간이 없어 준비를 못했지만 지난해까지 소 선생님의 마라톤 등 번호표는 남들과 달랐다.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우표 크기로 출력한 뒤 옆에 학생이 이번 수능에서 희망하는 점수와 소망을 깨알같이 적어 넣도록 했다. 이를 번호표 대신 등에 붙이고 매년 42.195km를 완주했던 것.
요즘 교실이 ‘위기’라고 한다. 체벌 전면금지 조치 이후 나타난 부작용 때문이다. 23일에는 서울 경기지역 교사 100여 명이 모여 이 문제를 놓고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좋은 말로 선도할 수 있는 학생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벌점을 주고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기는 방법도 그럴듯하지만 통하지 않는 아이가 수두룩할 것이다.
하지만 체벌 없는 학교는 결국 우리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결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위에 소개된 세 분의 선생님을 포함한 많은 선생님들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계실 것이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