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그룹 조직의 복원을 지시하며 한 말이다. 그룹 조직은 과거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불리며 대기업의 ‘친위대’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곳이다.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룹 조직을 부활시키기로 한 이 회장의 결정은 그동안 삼성의 강점으로 지목돼온 강력한 오너십과 빠른 의사 결정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삼성이 나아갈 길이라고 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방침을 밝힌 19일은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23주기 추도식이 열린 날이며 올해는 호암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 그룹 조직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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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그룹 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는 만큼 삼성 측은 그룹 조직의 부활에 조심스럽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인 이인용 부사장은 “형태적으로는 복원이지만 새로 출범하는 것을 계기로 일부 언론이 지적했듯 부정적인 이미지나 부정적인 관행을 씻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이 그룹 조직을 부활시킨 이유는 올해 초 리콜 사태로 불거진 도요타의 위기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애플의 급부상 등 치열한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 삼성의 위기감이 증폭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삼성은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로 이어지는 경영을 통해 오너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보좌하고 일사불란하게 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과거 전략기획실에 지나치게 역량이 집중되면서 부작용이 발생한 점을 감안해 새로운 조직은 계열사 위에서 군림하기보다는 역량을 모아서 계열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조직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3월 이 회장 복귀 이후 빠른 속도로 신수종 사업과 반도체 등에 대한 굵직한 투자가 결정됐다”며 “삼성의 장점인 강한 오너십과 빠른 의사 결정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룹 조직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뉴 리더’ 김순택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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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 부회장은 1978년 이후 15년 이상 비서실에서 근무해 그룹 전략과 현안을 잘 알고 있고 이 회장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점도 발탁의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이 회장이 강조했던 ‘차세대 먹을거리’를 개발하고 추진하는 데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이재용의 삼성 다질 김순택-최지성
이날 인사에 따라 삼성은 앞으로 김순택 부회장-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삼각편대가 전반적인 그룹 경영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순택-최지성 2명이 이 부사장의 미래를 다지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이건희 시대의 마지막 사람이고 최 사장은 이재용 시대의 첫 사람이기 때문에 2명이 경쟁하고 도우면서 이 부사장을 이끌어 주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이 회장을 보좌하면서 경영 승계 작업과 신사업을 챙기고, 실적이 좋아 다음 달 부회장으로 승진할 것으로 보이는 최 사장은 현재 삼성의 주력산업을 잘 키워 이 부사장이 경영성과를 내도록 보좌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승계 작업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물러나는 이학수와 김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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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 인사에서는 이 고문이 그룹 조직의 책임자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 고문과 김 상담역이 모두 계열사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이 회장은 과거와 선을 긋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결정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은 셈이다. 김, 이 고문은 8월 사면되면서 사법적 책임을 벗었지만 비자금 사태로 그룹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책임을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순택 부회장도 비서실에서 오래 일했다. 그러나 재무 분야에서 주로 일했던 이, 김 고문과는 달리 김 부회장은 경영지도팀, 비서팀, 경영관리팀 등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해왔다. 김 부회장의 발탁은 새로운 그룹 조직은 ‘금고지기’ 역할보다는 관리와 기획에 주력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