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와인 문화가 막 도입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 보졸레 누보는 많은 언론이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그 이름이 빠르게 알려졌다. 국내에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파티 문화가 거의 없었던 당시에는 그 규모가 어떻든 보졸레 누보 파티만 열리면 기사화될 정도였다. 이때만 해도 보졸레 누보는 언론에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정도로 큰 수혜를 봤지만 불과 2, 3년 만에 언론은 보졸레 누보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당시 언론 보도는 프랑스 현지에선 보졸레 누보가 매우 저렴함에도 국내에서는 고급 와인으로 대접받는다며 열심히 가격을 비교했다. 덕분에 보졸레 누보는 그 와인만이 가진 싱싱하고 활기찬 과일향의 개성을 부각시킬 기회도 못 얻고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당시 언론의 혹독한 비판은 보졸레 누보 그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보졸레 누보가 특정 시기에 큰 인기를 끄는 이벤트성 와인인 것을 이용해 일부 와인 수입사가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적 보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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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졸레 누보의 수입량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보졸레 누보가 한창 뜨던 당시만 해도 서울 시내 와인 전문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와인 시장 규모가 보잘것없이 작았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와인이 신비로운 음료도 아닐뿐더러 굳이 보졸레 누보가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와인이 나와 있다.
‘아직도 보졸레 누보를 사 마시냐’고 비아냥대는 사람이 많지만 누보에 대한 와인 애호가들의 애정은 변함없다. 법규상 보졸레 누보라고 부를 수 있는 기한은 다음 해 8월 31일까지이지만 사실 이 와인은 태생적으로 ‘보관’이란 말을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생명력이 짧다. 일반 와인에 비해 숙성이란 말을 붙이기 무색한 양조법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모든 것이 신선하면서도 발랄한 누보만의 개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세상에는 몇십 년에 걸친 생명 주기를 가진 와인도 있고 출시 후 고작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누보 같은 와인도 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와인도 결코 가질 수 없는 누보만의 맛, 누보만의 개성, 올해도 누보를 기다렸던 이유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랑데부 보졸레 누보 2010, 파스키에 데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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