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신라의 고도(古都) 한국의 경주에서 글로벌 환율전쟁의 막이 오른다.
21일 경북 경주시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차관들이 모여 환율 중재를 위해 머리를 맞댄다. 이들이 논의한 내용은 바로 다음 날부터 역시 경주에서 이틀간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상정된다.
그동안 위안화 절상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보인 미국과 중국 대표도 한 테이블에 앉아 본격적으로 환율 이슈를 논의한다. 나머지 국가도 강대국 간 환율전쟁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국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내일 경주서 G20 재무장관회의 개막… 대테러 경계 강화 22, 23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회의를 앞두고 20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 터미널에서 공항기동대원들이 대테러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이번 재무장관회의에서는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글로벌 환율 이슈에 대해 막판 조율에 나선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전 세계의 이목이 다음 달 11일에 열리는 제5차 서울 G20 정상회의에 몰린 점은 기회다. 하지만 환율 조율에 실패하면 한국의 리더십은 크게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신흥국의 대표주자로는 처음으로 선진국과 신흥국을 아우르는 중재자 역할을 맡은 한국의 리더십 역량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보고 있다.
○ 환율 조율 못하면 G20 성공 어려워
“결국 경주 재무장관 회의가 가장 중요하다. 경주에서 환율 문제를 합의하면 정상회의에서도 환율 충돌은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주 재무장관 회의에서 환율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회의 일정에 약간의 파격을 줬다. 통상 재무장관 회의는 첫날 업무만찬부터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환율을 논의하는 ‘세계경제’ 세션을 만찬 앞에 배치했다. 가장 민감한 주제에 대해 20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이 문제를 충분히 논의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에 앞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8일부터 29일까지 러시아를 시작으로 독일, 프랑스, 브라질, 미국 등 5개국을 방문한 데는 환율 문제를 사전 조율한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회의는 △세계경제 진단 △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한 협력체계 △IMF 개혁 및 글로벌 금융안전망 △금융규제 개혁 △금융 소외계층 포용과 에너지 등 기타 이슈 등 총 5개 세션으로 진행된다. 한국이 의장국 지위를 활용해 G20 의제로 제안한 ‘개발이슈’와 ‘글로벌 금융안전망’에 대해서도 참가국들 간의 의견교환과 향후 추진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 중국 기준금리 인상은 ‘굿 뉴스’
재무장관 회의를 사흘 앞둔 19일 중국이 34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이를 두고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는 내심 경주 회의에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금리를 올리면 자국 통화가치가 올라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을 감안할 때 중국의 금리인상 조치는 위안화 절상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워낙 미국이 위안화 절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니 자연스럽게 그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의 기준금리 인상 조치가 경주 G20 장관회의 때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회의가 시작돼야 알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환율전쟁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존 커튼 G20 리서치그룹 공동디렉터도 지난달 말 방한해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환율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 20개국 정상이 한국에 모이는 것은 정말 축복”이라며 “서울 G20 정상회의는 한국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