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로비 수사로 직행하나
태광그룹의 불법 증여 상속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 이원곤)가 19일 태광그룹의 재무총괄 책임자로 비자금 조성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대한화섬 박명석 대표(61)를 전격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박 대표를 비롯해 태광그룹 임원 4, 5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박 대표는 20여 년간 주로 태광산업에서 근무하다 2004년 6월부터 대한화섬 대표가 됐으며, 그룹의 자금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이에 앞서 검찰은 18일 역시 비자금 관리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부산의 태광그룹 소유 골프연습장 대표 김모 씨(63)도 소환 조사했다. 김 씨는 외가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일가와 인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검찰은 태광그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진 부산의 D건설사에 대해서도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는지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본보 기자가 19일 오후 D건설사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이 회사는 셔터를 굳게 내린 채 아무도 근무하지 않고 있었다.
이처럼 검찰은 태광그룹의 비자금 관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사들을 곧바로 소환조사하는 등 비자금의 흐름과 용처를 캐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회계장부를 정밀검토하고 자금 흐름 전반을 파악한 뒤 비자금과 관련된 핵심인사를 소환하는 게 검찰 수사의 통상적인 수순이지만 이번 수사는 곧바로 비자금의 출구, 즉 정관계 로비 의혹의 단서를 밝혀내는 쪽으로 ‘직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순탄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호진 회장의 어머니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82)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최근 두 차례나 법원에서 기각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 부분도 있다. 특히 이 상무의 경우 차명주식 등 상당 부분의 비자금을 수십 년간 관리해 왔다는 점에서 수사가 막힐 수도 있다. 나아가 사건의 파장은 엄청나게 커져 있으나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수사팀이 넘어서야 할 과제다. 검찰은 ‘정관계 로비 대상 명단을 확보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아직은 확보한 게 없다”고 밝히고 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